[광화문]총선 1주일, 한가한 정부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20.04.24 04:25


4·15 총선 후 1주일. 정치권은 여전하다. 자리를 못 잡은 채 헤맨다. 참패한 미래통합당은 논할 수준도 안 된다. 반성해도 시원찮은데 부정선거 논란에 귀를 기울인다.

'830 기수론'(1980년대생·30대·2000년대 학번)을 던지면서 실제론 80살 어른을 모셔온다. ‘포스트 코로나’ 고민을 기대하는 건 사치다. 창의를 꿈꿀 조직 자체가 아니다. 딱 그 정도 수준이다.

180석을 얻은 여당은 “무섭고 두렵다”며 몸만 낮출 뿐 민심을 받아 안지 못한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50%를 돌파하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64%까지 치솟지만 총선 직후 후광 효과일 뿐이다.

실제론 총선 후 1주일 동안 적잖게 깎아 먹었다. 패인(敗因)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내는 통합당과 달리 정부 여당은 승인(勝因)을 외면한다.

민주당의 총선 승리 이유는 ‘코로나 국난 극복’이다. 3년에 대한 평가, 정부에 대한 견제 등은 접어뒀다. 국민은 절박함과 간절함을 투표용지에 담았다. 그만큼 위기를 느낀다. 일자리·소득이 ‘무섭고 두렵다’.

정부 여당은 그러나 한가해 보인다. 특히 정부가 그렇다. 그러다보니 타이밍이 늦다. 지난달 나온 공매도 금지,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 확대 등은 작은 예일 뿐이다. 머뭇거리고 주저한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결단력이 모자란다. 못한다는 핑계를 댈 때만 창의적이다.

무엇보다 위기 국면에서 필요한 속도(Speed)와 단순(Simple)이 부재하다. 뒤늦게 결정된, 긴급재난지원금이 대표적이다. 전혀 ‘긴급’하지 않다.

이재웅 쏘카 대표가 재난기본소득이란 이름으로 제안한 게 2월말.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달초 ‘전국민 100만원 지원’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이 호응했고 여당도 나섰다.

하지만 정부(기획재정부)는 또 머뭇거리고 주저했다. 당정청 안(소득하위 70% 지급)을 만드는 데까지 한 달 이상 걸렸다. 여야가 전국민 지급으로 사실상 합의했는데도 총선 후 1주일을 허비했다.

변화가 두려운 기재부가 ‘정치’하면서다. 문 대통령이 “여야가 국회에서 논의해서…”라고 우회적 주문을 해도, 정세균 국무총리가 조정에 나서도 기재부가 버틴다. ‘위기 극복’이 아닌 ‘나라 곳간 지키기’만 경제부총리의 소명으로 안다.

온갖 논란 속 나쁜 결정과 무결정 이후 때늦은 결정을 내린다. 혼란을 만들었고 갈등만 부추긴 채 말이다. 기간산업 대책, 고용유지 대책 등을 쏟아내도 긴급재난지원금 논란에 묻힌다.

일본조차 5월부터 전국민 10만엔(외국인까지 포함)을 준다고 하는데 한국이 제일 늦을 판이다. 속도가 느려지면 할 일만 더 쌓인다.

복잡하면 속도를 낼 수 없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경남 자체적으로 중위소득 100% 가구를 대상으로 지급한다. 건강보험료 기준을 따랐다. 그것만 설계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그마저도 불완전하다. 매출이 줄었는데, 버는 돈이 없는데 재작년 소득이 좋았다는 이유로 배제된다.

전쟁터에서 폭탄으로 부상당한 사람, 무너진 벽 때문에 부상당한 사람, 가다가 놀라 넘어져 다친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이진 않다. ‘기부’와 ‘세액공제’ 등 복잡해질수록 취지는 퇴색한다.

‘속도감있는, 심플한’ 정책이 실행되지 않는 것은 현장이 아닌 탁상에서 논의되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을 제일 먼저 꺼낸 이재웅은 기업 현장과 노동 현장에서 필요성을 깨달았다. 김경수와 이재명은 행정 집행 현장에서 절규를 접하고 문제점을 느꼈다. 여야 정치권은 자영업자 등의 민심을 들었다. 컴퓨터 속 예산 시트엔 없는 아우성과 현장의 목소리다.

재정 건전성이 두려울 수 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없다. 낡은 원칙에 집착해 “안 돼”만 외친다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가 만들어진 이유는 아니다”라고 썼는데. 경제부총리는 곳간 열쇠를 왜 들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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