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상임위 중심주의' 회복하라

[the300][대한민국4.0, '대변혁'으로 가자][3회]'한국정치4.0'- 21대 국회, 상임위 중심주의 회복하라

이원광, 강주헌 기자 l 2020.05.10 05:00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 국민들은 코로나19(COVID19)로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걱정한다. 더 이상 예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 정부를 비롯해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다가오는 미지의 세계를 준비해야한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지혜를 모아야한다. 머니투데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대한민국4.0, 대변혁으로 가자고 제언한다.

지난 3월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6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되자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항의하며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상임위 인질극’ 끝내야 민생국회 열린다


“위원회는 상설소위원회를 ‘둘 수’ 있고 필요한 경우 특정한 안건의 심사를 위해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국회법 57조1항)

둬도 되고, 안 둬도 된다. 여당은 사실상 ‘의무 규정’으로, 야당은 ‘임의 규정’으로 해석한다.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공수 교대하면 입장도 바뀐다. 법 취지와 규정을 둘러싼 논쟁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회기가 끝난다. ‘일 안하는 국회’는 이렇게 되풀이된다.

20대 국회가 그랬다. 여야의 정쟁 구도가 격화되면서 상임위원회가 열리는 날보다 문닫는 날이 많았다. 사실상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하는 대한민국 국회에서 상임위는 ‘파행’의 대명사다. 민생을 책임져야할 상임위가 멈추니 국민 삶은 더 팍팍해진다. “21대 국회에선 상임위 중심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대한민국 국회는 ‘상임위 중심주의’…‘소위’가 중추

우리 국회는 명목상 ‘상임위 중심주의’를 채택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17곳의 상임위에서 분야별 입법 의제를 다루는 한편, 이해 관계를 조정하고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대체로 모든 안건을 본회의가 심의·표결하는 영국의 ‘본회의 중심주의’와 구별된다. 상임위 중심주위는 신속성과 전문성에서, 본회의 중심주의는 국민 여론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점에서 강점을 보인다.

소위원회(소위)는 ‘상임위 중심주의’의 중추다. 상임위마다 설치된 법안심사 소위가 대표적이다. 법안 심사 소위는 ‘법안 공장’과 같다. 여야 의원들은 이 곳에서 소관 법안에 대해 토론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대체로 만장일치 등 합의를 통해 처리한다. 소위의 합의 사안은 상임위 전체회의 문턱을 넘는다.

◇‘무늬’만 상임위 중심주의?…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문제는 각 소위가 상시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법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국회법 57조1항에는 각 위원회는 상설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명시됐다. 민생을 위해 상설 소위원회의 필요성을 밝히고도 강제하지는 않은 것이다.

같은법 57조2항 역시 상임위는 법안 심사를 분담하는 둘 이상의 소위를 둘 수 있다고 열어놨다. 15대 국회에서 정보위를 제외하고 모든 상임위에 3개 이상 상설 소위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했으나 17대 국회에서 운영 여건 등을 고려해 이같이 변경했다. 정치권에서 소위를 두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냉소적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소위가 안 열리니 상임위도 운영되지 않는다. 상임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주로 소위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 의결하는데, 소위가 일을 안 하면 상임위도 할 일이 없다. 여야가 정략적 판단에 따라 소위와 상임위를 멈춰세우는 데 국회법이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이에 국회법을 개정해 ‘일하는 국회’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싸울 때 싸울더라도 법안 등을 논의하는 상임위 및 소위를 상시 운영해 여야가 일을 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미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돼있다. 지난 3월 문희상 국회의장이 대표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상임위별로 소관 사항을 분담·심사하는 상설 소위를 2개 이상 설치하도록 했다.

전해철 더불어민주당(왼쪽부터), 이종배 미래통합당, 김광수 민생당 예결위 간사가 지난 3월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코로나19 추경안과 관련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지도부 지령 “해주지 말아라”…‘상임위 인질극’ 끝내야

상임위를 대하는 여야 지도부의 행태 역시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당 지도부는 국회법의 결함을 이용해 때때로 상임위 운영을 협상의 수단으로 삼는다. 야당 지도부가 이같은 유혹에 쉽게 빠지는데 정권이 교체되면 입장이 바뀐다.

자기 진영의 요구를 상대 측이 수용하면 상임위 등 국회 의사일정에 합의해주는 방식이다.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갖가지 구실을 동원해 상임위를 가동하지 않는다. 이른바 ‘상임위 인질극’이다.

‘수 틀리면’ 진행 중인 상임위도 멈춰세운다. 상임위 여야 간사가 치열한 논의 끝에 합의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당 지도부의 ‘지령’이 떨어지면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실제로 모 원내대표의 경우, “혼자 원내대표, 각 상임위 간사 역할까지 다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외에서 나오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상임위에서 안 풀리는 것 중 상당수가 지도부가 ‘해주지 말아라’ 식으로 막고 있는 게 많다”며 “임시국회를 열어놓고 아무 상임위도 열리지 않는 것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나”라고 꼬집었다.





500조 넘는 예산 밀실에서 칼질…“의원님들 나눠갖기”


국회 상임위원회는 ‘국회의 꽃’이다. 국민 삶의 질 향상과 문제점 개선을 위해 법을 만들어 상임위에 상정하고 여야 간 토론을 통해 접점을 찾아 통과시킨다. 이는 우리 삶을 바꾸는 정책으로 이어진다.

입법과정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로 꼽히는 곳이 바로 상임위 산하 ‘소위원회’다. 각 상임위는 법안심사소위, 예산결산심사소위, 청원심사소위 등을 법안이나 안건을 심사한다.

문제는 법안심사의 ‘키’를 쥐고 있는 소위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입법이 국민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소위 심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들 접근 금지'…공개가 원칙인데 도대체 왜

상임위 전체회의는 국회방송에서 중계방송을 한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안건이 있을 경우 기자들과 언론사 카메라가 몰린다.

소위 역시 공개가 원칙이다. 국회법 제57조는 ‘소위원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소위원회의 의결로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의원들은 ‘공개한다’는 앞 문장은 무시하고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뒷 문장만 본다. 소위 회의장 문이 굳게 닫히는 이유다. 취재기자들의 출입은 금지되고 의원들과 보좌진, 국회와 정부 관계자만 회의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안보와 범죄 등 민감한 안건의 경우 기밀 누설이나 신상 공개에 의한 2차 피해 등 우려로 실시간 공개가 어려운 건 고려돼야 한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가 기밀을 다루는 정보위원회, 징계 문제를 논의하는 윤리위원회 등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하지만 국민의 삶과 밀접한 정책이나 법안을 다룰땐 공개를 해야한다. 그래야 여야 정치권도 정쟁보다 공익에 가치를 두고 심사를 할 수 있다. 국민의 눈에 노출됐을 때 법안 논의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카드’로 쓰는 모습이나 막말, 고성 등 낯 뜨거운 행태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속기사들이 작성한 소위 회의록이 추후 국회 회의록 홈페이지에 게시되지만 실시간 공개의 파급력을 따라가긴 어렵다. 국회 관계자는 “아무리 소위를 회의 이후 공개한다고 해도 논의 내용이 실시간으로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다면 밀실에서 졸속으로 심사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밀실 예산 심사' 고질적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500조원이 넘는 예산안을 심사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의 ‘소(小)소위’ 구성은 고질적 문제다. 예산안의 증·감액을 최종 심사하는 소소위가 비공개로 ‘깜깜이’ 진행된다는 비판이다.

2020년도 예산안 심사 때는 투명성 제고 차원의 개선이 있었다. 예측 가능하고 공개적인 협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여야 교섭단체 3당 간사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소소위’를 구성하기는 했지만 이때는 소소위 속기록을 작성하고 매일 언론 브리핑을 하기로 했다.

또 소소위는 예산소위처럼 매일 일정한 시각에 개의하고 산회하기로 했다. 소소위 장소도 예산소위 회의실로 고정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예산심사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은 이상 투명성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었다.

여야 교섭단체 3당 간사만 참여하는 소소위에서 각 당 지역구 의원으로부터 지역 관련 예산이나 선심성 예산을 반영해달라는 ‘쪽지 예산’은 여전했다.

여야 당 대표와 예결위 소속 의원들이 ‘쪽지’와 ‘카톡’을 주고받으며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민원성 예산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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