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도(高度)를 가리지 않는 코로나19

[the300]

김학재 주볼리비아 한국 대사 l 2020.05.25 05:31
우리는 지금 격변기를 살고 있다. 빌 게이츠도 토마스 프리드만도 앞으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봉쇄로 인해 세계 곳곳은 일상을 잃어버렸고,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란 생경했던 단어가 이제는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았다. 

국경도 고도(高度)도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해발 3600미터에 수도를 두고 있는 이곳 볼리비아도 홍역을 치르고 있다. 3월 중순 이후 국경폐쇄와 의무적 자가격리 조치를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5월 중순을 기준으로 감염자가 4천명이 넘고, 확산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볼리비아는 남미 내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낮은 나라로 의료시설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기초의료 시설마저 미비한 지역이 다수여서 더 우려가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체류 중인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귀국 문제가 무엇보다 걱정이었다. 이에 3월 중순부터 여타국의 임시항공편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고,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마이애미행 임시항공편을 운항할 예정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를 한인사회와 여행객들에게 긴급 공지했고, KOICA 단원, 여행객, 현지 교민 등 총 47명이 3월28일 제1차 미측 임시항공편에 탑승하여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또한 4월2일 및 4월21일 미측의 제2차 및 3차 임시항공편을 통해 총 13명의 우리 국민이 안전히 볼리비아를 출발하였다. 이후 볼리비아 국내항공의 특별기 운항 소식을 접하자마자 즉시 공지하여 지금까지 우리 국민 10여 명이 추가로 출국할 수 있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간단한 일 같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다. 지역 간 통행금지 조치 때문에 내무부 차관을 직접 찾아가 어렵게 통행허가증을 받았으나, 지방에 있는 우리 국민들을 수많은 검문소를 통과해 공항까지 이동시키는 과정은 가히 첩보 작전을 방불케 했다. 담당영사가 우리 국민들의 이동 지원을 위해 라파스와 산타크루스를 왕복하며 장장 32시간, 1700km를 달린 일도 있었다. 그리고 KOICA 단원 두 명이 임시항공편 출발을 앞두고 발열증상을 보여 탑승을 포기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 다행히 이 두 사람은 곧 상태가 호전되어 다음번 임시항공편에 탑승할 수 있었다. 그들과 가족들의 심정이 어땠을지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저릿하다. 

어려운 난관 속에서도 세계 각지의 대사관 직원들의 숨은 노력으로 우리 국민들이 무사히 귀국길에 오른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마지막 손 인사를 하며 감사와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입국장에 들어가는 우리 국민들을 보며, 안전한 귀국을 응원했다. 

위기는 기회라 했던가.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확산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나라의 대응역량이 빛을 발하고 있다. 볼리비아를 비롯하여 많은 중남미 국가에서 한국의 보건역량과 개방성, 투명성, 민주성을 바탕으로 한 한국식 대응이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이를 배우고 또 도움을 얻고자 하고 있다. 볼리비아 의료관계자들도 2차례에 걸쳐 화상회의를 통해 우리 국내 의료진이 코로나19 대응 노하우를 전수하는 웹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최근 우리 정부는 볼리비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결정하였고, 현재 실무 협의를 진행 중이다. 우리의 이러한 연대와 협력의 정신을 통해 보건 역량 부족과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볼리비아가 코로나19를 조속히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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