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없다"는 통합당, 80살 김종인의 숙제

[the300]

박종진 기자, 강주헌 기자 l 2020.05.23 06:32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22일 서울 종로구 대한발전전략연구원에서 열린 주호영 원내대표와의 면담에서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후 주 원내대표를 배웅하고 있다. 2020.5.22/뉴스1


돌고 돌아 '김종인'이다. 사상 초유의 참패를 당한 미래통합당이 총선을 치른 지 37일 만에 지도체제를 결정했다.

'김종인 비대위'는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부터 당연한 귀결로 여겨졌다. 하지만 당내 이견이 만만치 않았다. 더 이상 외부인사에 운명을 맡기지 말고 스스로 혁신을 하자는 목소리가 상당했다. 소위 자강론이다.

탈당해 무소속으로 제21대 국회에 입성한 홍준표 전 대표 등 대선주자들과 조경태, 김태흠, 조해진 등 당내 중진들 상당수가 자강론을 주장했다.

그럼에도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가 이끄는 새 원내 지도부는 당선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김종인 비대위'로 지도체제를 22일 확정했다.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임기는 내년 4월 재·보궐 선거까지다. 당장 1년간 당을 쇄신할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서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최선이라는 판단이다.

일단 결정이 된 만큼 '김종인 체제'로 빠르게 당이 단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김종인 비대위'를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왔던 한 3선 의원은 "신탁통치를 받는 셈"이라면서도 "결정이 됐으니 이제는 국민들께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뇌가 없다? "여의도연구원부터 살리자"



김종인 체제의 숙제는 만만치 않다. 폐허에서 재건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는 뇌사 상태에 빠진 당을 살리는 일이다.

'뇌'를 살리기 위해서는 여의도연구원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전략의 부재는 수년간 보수진영의 뼈아픈 지점이다.

최근 "뇌가 없다"고 비판한 진중권 전 교수의 지적대로 당내 분석 능력 등은 오래 전부터 형편없이 추락했다.

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여연) 이종인 수석연구위원은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당 총선 패배 원인과 대책은' 토론회에서 '싱크탱크의 부실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 정당사와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역할을 보면 알 수 있듯, 보수 정당의 재집권 전략에는 (탄탄한) 싱크탱크가 핵심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지금의 여연은 조직과 기능, 역할과 역량 등에서 문제가 많다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2010년 당시에는 상근 인력이 40명, 형식상으로는 100명이 넘었다. 예산 집행과 사업 수행도 수준급 민간 연구소에 견줄 수 있었다"며 "과감한 전문 연구자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합당 한 중진 의원도 "여연부터 제대로 키워야 한다"며 "당의 머리가 기민하게 작동해야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총선을 말하다! 길 잃은 보수정치, 해법은 무엇인가' 포럼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20.5.15/뉴스1




'꼰대' 이미지 못 바꾸면 영원히 집권 못한다



'김종인 비대위'의 또 다른 핵심 과제는 당의 체질개선이다. '꼰대정당' 이미지를 벗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 일찌감치 당내에서는 청년정당으로 변화가 강조돼왔다. 1940년생인 김 내정자 역시 그동안 언론 인터뷰 등에서 70년대생 대권 주자를 거론하는 등 세대교체를 주장했다.

비대위원이나 당 지도부에 청년 인사들의 참여가 확대될 전망이다. 당 안팎에서는 이번 총선에 나섰던 40대 이하 후보자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이른바 '섭·섭·이'(김재섭·송한섭·이준석) '호·람·은'(박진호·천하람·조성은) 등이다. 이들은 총선에서 험지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의미 있는 득표율을 거두며 선전했다.

총선 이후에도 꾸준히 모임을 가지며 청년 그룹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내정자가 당을 지휘하면 이들을 핵심 보직에 기용할 가능성이 적잖다.

주호영 원내대표 또한 청년 정당에 관심이 상당하다. 주 원내대표는 서유럽처럼 당내에 청년 정당을 따로 만들어 지속적으로 젊은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장세영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9일 서울 도봉구 창동 쌍문역 앞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도봉구 지역 지원유세에 참석해 미래통합당 제21대 총선 서울 도봉갑 김재섭 후보자, 도봉을 김선동 후보자와 함께 손을 들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0.04.09. photothink@newsis.com




목표는 2022년 대선, '백지상태' 이점 살려 '선수' 키워야



'김종인 비대위'의 궁극적 과제는 대권 주자를 기르는 일이다. 임기는 2021년 4월7일 재·보궐 선거까지지만 모든 시선은 2022년 대선으로 쏠린다. 단기간에 당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만들고 '선수'를 키워야 한다.

현재 보수진영의 유력한 대권 주자는 없다. 황교안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은 전원 낙선했다.

불출마한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본격적인 대권 도전에 나서겠지만 흐름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당 밖에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지사 등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홍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하늘이 내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며 "(제21대 국회가) 개원이 되면 전국적으로 대국민 정치 버스킹(거리 공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내정자도 현실을 잘 안다. 김 내정자는 이날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이 '40대 기수론'을 묻자 "그런 사람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데 40대 기수론을 갖다가 무조건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확실한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이 '약'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줄 서는 계파의 폐해도 없기 때문에 개개인의 실력으로 국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내 사정에 밝은 한 재선 의원은 "백지 상태가 차라리 아름답다"며 "김종인 비대위는 소속 의원 등이 각자 전문성을 살려 실력발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권 주자가 떠오를 수 있으면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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