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 사고, 무조건 징역?"…민식이법 둘러싼 '혐오'

[the300][300소정이 : 소소한 정치 이야기]

이원광 기자 l 2020.05.26 06:00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특가법 개정안)'이 시행일인 지난 3월 25일 서울 성북구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차량이 규정 속도를 초과해 운행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시속 30km 미만으로 운전하거나 어린이 안전의무를 위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상사고까지 가중처벌하게 되면 과도한 형벌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중략)” -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검토보고서

이른바 ‘민식이법’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감성팔이’ 입법이라는 원색적 비난에 유가족을 향한 혐오가 더해진다. 불과 반년전,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고(故) 김민식 부모가 흘렸던 눈물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사실관계가 혼재된 가운데 자의적 해석과 막연한 공포가 사회 갈등으로 번진다.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민식이법은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에서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도로교통법’과 스쿨존의 어린이 상해 및 사망 사고 가해자를 가중 처벌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으로 이뤄진다. 여야는 지난해 12월 극단의 대치 정국에도 민식이법을 민생 법안으로 지목하고 합의 처리했다.

논란의 대상은 특가법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운전자가 피할 수 없었음에도 모든 책임을 운전자에게 부담시킨다’는 등 주장이 나온다. 지난 3월 개정된 법이 본격 시행되면서 운전자들이 무고하게 형사 처벌을 받는다는 공포가 확산된다.

그러나 개정된 특가법은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중 과실이 입증된 운전자로 처벌 대상을 정한다. 특가법 5조13에는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어린이(만 13세 미만)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할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에게 교통사고처리특례법 3조1항의 죄를 범한 경우 가중처벌한다고 명시돼있다.

특가법이 인용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3조1항은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형법 268조의 죄를 범한 경우다. 형법 268조의 죄는 ‘업무상 과실’이나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다. 다시 말해, 스쿨존에서 어린이 안전의무를 위반해 과실로 어린이를 다치거나 숨지게 한 이들이 처벌 대상이라는 의미다.

이달 21일 두 살배기 남자아이가 불법유턴을 하던 차량에 치여 숨진 전북 전주시 반원동 한 어린이보호구역. / 사진제공=뉴스1




'민식이법' 때문이라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보면… 


입법 과정에서도 이같은 취지가 드러난다. 해당 법안에 대한 국회 법사위 검토보고서에는 “시속 30km 미만으로 운전하거나 어린이 안전의무를 위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사상사고까지 개정안을 적용해 가중처벌하게 되면 과도한 형벌이라는 측면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교통사고처리법 3조2항11호에 따른 행위로 인한 사상사고에만 가중 처벌하는 방안 등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됐다.

같은법 3조2항11호에 따른 행위란 스쿨존에서 어린이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할 의무를 위반해 어린이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를 의미한다. 민식이법 입법 과정에서 사실상 검토보고서의 지적 사항이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가법이 규정한 스쿨존 안전의무나 과실에 의한 처벌 등이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된다. 개정된 특가법은 범죄 유형을 2017년 12월 시행된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기존 형법 등에서 인용하고 있다. 기존에 규정된 범죄 유형에 대한 가중 처벌이 핵심으로, 법이 바뀌면서 운전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게 될 확률이 높아진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무조건 징역’이란 주장도 막연한 공포에 가깝다. 개정된 특가법에 따르면 스쿨존에서 어린이 안전의무를 위반해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문제는 '혐오'…논의 공간 '소멸'


운전자의 불안 심리 역시 현실이라는 점에서 과실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논의 대상이다. 형법 등 타법에서도 과실 혹은 중대한 과실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는 경우가 많고, 또 다른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 등은 함께 고려돼야 한다.

문제는 혐오다. 민식이법 자체가 혐오 대상이 되면서 발전적 논의를 위한 공간이 소멸하는 상황이다. 반대 측 목소리가 역설적으로 혐오 정서에 묻히는 셈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21대 국회 당선인 중 누구도 ‘민식이법’을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향후 ‘민식이법’ 효과가 입증되고, 지나친 우려가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376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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