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슈퍼 여당의 '트라우마'

[the300]

박재범 정치부장 l 2020.05.28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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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에 대응하는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4.0 포럼에서 신진욱 중앙대 교수가 내놓은 총선 분석이다. 

신 교수는 “이번 선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은 국민이 절박하고 긴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 정치인과 정당이 어떤 태도를 보여줬냐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과 정당은 곧 문재인 대통령과 미래통합당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은 ‘단기성과’를 보여줬다. ‘코로나 19’는 우연이었지만 그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문 대통령은 정부·여당의 전체를 대표했다. 필연적인 것은 통합당의 취약성이었다. 보수 진영은 애써 부인하고 싶었지만 혁신 없는 통합은 허울뿐이었다. 

취약한 정당에게 위기에 맞는 해법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제 조직 하나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다는 것을 우린 지금도 보고 있다. 

수준 높은 유권자는 우연과 필연의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판단했다. 그 결과는 슈퍼 여당의 출현이다.

#슈퍼 여당은 “무겁고 무섭다”고 했다. 과거 경험이 한몫했다. 이른바 열린우리당 ‘트라우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 한복판에서 치러진 총선 때 열린우리당은 ‘탄핵 역풍’을 타고 과반인 152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소멸된다. 이해찬 당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며 아예 드러낸다. 

안 된 집의 이유를 찾으면 수백 수천가지가 넘는다. 당의 분열, 계파 갈등, 당청 갈등…. 민주당은 그래서 철저히 관리한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한다. ‘원 팀’ ‘원 보이스’를 헌법 가치만큼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당청 갈등, 당내 갈등이 불거진 적은 없다. 전당대회, 지방선거, 총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 속 잡음은 거의 없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도 대오는 유지됐다. 그만큼 ‘트라우마’가 심하다는 의미다.

#갈등·분열에 감춰졌지만 실제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능력 이상의 의석에서 출발한다. 정치 지형을 봐도 진보 우위가 아니었는데 오판했다. 

‘탄핵 역풍’이란 우연이 만든 결과를 필연의 열매로 착각했다. 특히 ‘탄핵 이후’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개혁 과제를 전략적으로 배치하지 못했다. 그저 몰아붙였다. 안팎의 공격에 맞서고 대응하는 정치로 규정하고 즐겼다. 다수의 정치는 고민하지도, 만들지도 못했다. 

슈퍼 여당은 이 지점에 서 있다. 갈등은 잘 관리해왔다. 원팀 플레이는 여전하다. 코로나 19 대응에 대한 정부 여당 신뢰로 확인됐다. 

다만 177석에 대한 준비가 돼 있냐는 물음은 계속된다. 능력에 맞는 의석인지 의구심도 적잖다. 우연과 필연 속 ‘관리’의 결과일 뿐 민주당 주도의 완벽한 리얼라인먼트(Realignment·재정렬)는 아직 아니기에 그렇다. 지형이 흔들렸을 뿐 토대가 마련된 것은 아니란 얘기다. 

# 대한민국 4.0 포럼에서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비포 코로나(before cvid-19) 시대의 결과일 뿐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 경쟁은 포스트 코로나에 맞는 법과 제도를 적절한 시기에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슈퍼 여당이 자리잡은 국회는 ‘견제’보다 ‘의제 설정’ 기능을 요구받는다. 그 역할은 전적으로 민주당의 몫이다. 결국 슈퍼 여당의 역할은 관리가 아니라 전략·비전의 제시다. 

시기적으로 보면 포스트 코로나 뿐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 전환에 대한 발제까지 해내야 한다. 177석 의석의 무게보다 주어진 과제가 더 무겁고 무섭다. 

21대 국회 개원 이틀을 앞둔 시점, 기대보단 걱정이 앞선다. 포스트 코로나 관련 아젠다(agenda·의제) 세팅이나 창의적 정책 제언은 거의 없다. 

한명숙·윤미향 등이 부각되는 것은 여당의 선제적 발제, 주도적 정책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여당이 현안에 대한 ‘반응’과 ‘입장’만 내놓다보면 포스크 코로나, 구조적 전환에 대한 전략적 고민은 누가 하나. 

‘액션’이 아닌 ‘리액션’만 할거면 177석까지 필요 없다. 관리를 너머 능력과 실력을 보여줘야 열린우리당 트라우마를 진짜 벗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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