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영의 마지막 소신…'20대 국회·청년·초선'과의 작별

[the300][김하늬의 정치스탯]

김하늬 기자 l 2020.06.01 06:52
김해영 민주당 의원 인터뷰

"여러분의 지지 덕분에 국회에서 '용기' 내어 일 할 수 있었다."

부산 연제구 초선 김해영은 20대 국회를 떠나며 자신의 4년간 의정활동을 '용기'라는 단어로 압축했다. 지난 22일 문희상 국회의장으로부터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 상을 받으며 국회의원활동을 잘 마무리하면서도 당내 최고위원으로 각종 현안에 소신발언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곤 했다.

떠나는 김해영 전 의원을 머니투데이 더(the)300이 지난 28일, 국회에서 만나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다.



김해영의 '용기'와 이해찬의 '침묵'


김해영 민주당 의원 인터뷰


특히 대부분의 초선 의원들이 '무서워' 했던 이해찬 당대표 앞에서 김해영은 꿋꿋하게 공개 소신 발언을 했다. 

지난해 '조국 사태' 때도,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 아들 세습이 논란이 시작했을 때도, 김남국 공천 논란과 최근 윤미향씨 의혹에도. 

메시지는 단호했지만 태도는 진중했다. 그는 "당이 선제적으로 확인하고 국민 앞에 답을 내놓자"는 취지로 한 발 앞서 나갔다. 

민주당 지도부가 대부분의 사안에 '사실을 확인한 뒤 판단하겠다'고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던 것과 조금 결이 달랐다. 김해영은 민주당 내 '확장성'의 지점이 됐다. 그가 부산 지역구 의원이라는 지역적 상징성도 있지만 당내 소화 가능한 비판의 지점을 적절한 선에서 짚어줬다는 내부평가가 많았다. 

떄문에 민주당 지지자들과 당원들 사이에서도 '공개 저격'을 받던 다른 소신파 의원들과 차별성을 갖는 정치인이었다. 김 전 의원은 "다행스럽게도 의원총회 등에서 일부 초·재선 의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제 의견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곤 해서 감사했다"고 소회했다.

놀라운 건 이해찬 당 대표의 반응이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의트레이드 마크인 매서운 눈빛으로 힐끔, 김 전 의원을 한 번 쳐다만 볼 뿐 별다른 지적이 없었다. 의원들끼리만 모인 비공개 회의때도 마찬가지다.

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비공개 회의때 이 대표가 위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지적하거나 화를 내는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의 소신발언에 첨언을 하거나 지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서울=뉴시스] 김진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박광온, 김해영 최고위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0.02.14. bluesoda@newsis.com


이를 두고 한 원로 민주당 의원은 약 25년 전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1996년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고 제1야당 총재로 총선을 준비하던 어느날이었다. 이해찬 당시 재선의원이 DJ의 발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라는 취지의 소신 발언을 했다는거다. 

회의에 함께 하던 대부분의 원로 정치인들이 깜짝 놀랐다. DJ는 그저 '허허허' 웃었다고 원로 정치인은 전했다.

얼굴이 울그락 풀그락 해진 김옥두 전 의원이 이 대표를 회의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고 전해진다. "말대꾸를 그렇게 하면 쓰나" 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찰싹'.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뺨 맞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벌겆게 상기된 두 사람이 곧 회의장으로 다시 들어왔다. 사람들은 짐짓 모른 채 했지만 당시 엄격한 위계질서 문화 속에서 이 대표가 꾸중을 들은 뒤 맞았다고 구두로 전해진다.

25년전 자신의 '강단'이 김해영의 '소신'에 겹쳐보여서일까. 이 대표는 최고위 내내 김해영의 튀는 소신 발언도 그 또한 민주당의 목소리로 그냥 두는 당대표의 위치를 지었다.



"아쉽다. 하지만 설렌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 인터뷰


국회의원회관 4층 사무실은 비웠다.  박주민 의원실 옆방이었다. 나이가 비슷한 또래인 두 의원은 주요 관심사안이 때론 같고 주로 달랐다. 하지만 각자의 길이 새로운 민주당 문화의 '꼴라주'를 만들 수 있다는 공감대가 깊었다.

김해영은 떠나고 박주민은 남는다. 김해영은 "솔직히 아쉽다. 21대 국회에 남는다면 더 하고싶은 일을 많이 적어두었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선 30대 초선 국회의원으로 '청년' 아젠다를 주로 맡았다. 초선이 대거 들어온 21대 국회에서 그는 '청년'을 넘겨주고 좀 더 국가적인 아젠다에 집중하고싶었다. 지역균형발전, 정치 문화, 교육정책, 입법 시스템까지. "정말 국회와 국가를 알면 알 수록 해야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대부분 낙선한 의원들은 한동안 여의도를 쳐다보고싶지도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김해영은 당분간 부산과 서울을 매주 오갈 예정이다.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까진 최고위원직을 유지한다. 그는 "최고위원회의가 열리면 마지막까지 출석해 맡은 바 소임을 다 해야지 않겠냐"며 웃는다. 

또 본업인 변호사를 살려 부산에 '지혜와 바다'(가칭)라는 법무법인 사무실을 열고 지역사회를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러브콜'…당분 "내 그릇을 가늠해보고 싶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 인터뷰


김해영은 남은 삶에서도 정치를 놓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방향과 속도가 어떻게 흐를지 모른다. 덜컥 찾아온 부산 지역위원장의 기회와 1년만의 총선준비, 첫 도전에서 당선. 그리고 꽉찬 4년 뒤 갑작스런 쉼표가 찾아왔다"며 "다시금 나의 정치적 그릇의 크기와 역량을 담금질하고 천천히 다음을 준비하는 좋은 시간을 만들고 싶다"고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벌써부터 '러브콜'이 쏟아진다. 주요 여권 대선주자 여럿이 김해영에게 "조만간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는 후문이다. 그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은 "젊은 정치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기회를 주고싶은 선배님들의 애정어린 조언을 많이 받는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아직은 스스로 채워야 하는 시기라고 보고있다. 김 전 의원은 "초선 때 현장에 천착하고 다양한 삶의 목소리를 정부에 잇기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려 노력했다"며 "이제는 국가 발전을 위한 의제를 착안하거나 기존 의제를  수정하고, 우선 순위를 결정한 뒤 의사결정 구조와 속도의 정치적 과정을 주도하는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확실한 여권 잠룡으로 꼽히는 인물이 부재한 상태에서 젊고 새로운 정치지도자에 대한 갈망은 김해영으로 귀결된다. 

부산이라는 민주당 험지, 젊은 2030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 강단있는 진보적 목소리는 김해영의 특징이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공통점이라는 점에서 당내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 민주주의가 겪어온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특수성을 감안한 의회민주주의와 대통령제, 그리고 개헌과 정당발전 등을 '백수의 시간' 동안 자유롭게 공부해보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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