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상법 개정안 재추진…김종인의 선택은?

[the300][런치리포트- 상법 개정안 재추진]

강주헌 기자, 김하늬 기자, 권제인 인턴기자 l 2020.06.03 05:45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시작 나흘만에 공정경제 실현을 위한 상법 개정안을 다시 꺼내들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정국정상설협의체가 상법 개정 노력에 합의까지 했지만 야당의 반발로 처리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정책위의장이던 김태년 의원은 원내대표가 됐다. 김 원내대표는 2018년 당시 "반드시 상법 개정안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 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에 대한 경제계 일각의 우려 목소리도 있지만 기업지배구조 투명성강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말로 상법 개정을 강력히 추진한 바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177석의 '거대 여당'으로 강력한 힘을 쥐고 있다.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은 여당이 주장하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통합당 내 분위기 변화도 감지된다. 통합당의 대표격인 비상대책위원장을 '경제민주화 전도사' 김종인 위원장이 맡으면서다. 
 




◇당정 "경제민주화는 국정과제"…21대 국회 통과 의지


선봉에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섰다. '1호 법안'으로 상법 개정안 대표발의를 예고한 박 의원은 2일 국회에서 '기업지배구조개선 토론회'를 열었다. 사실상 상법 개정안 공청회 성격의 행사다.

박 의원은 "경제민주화는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민주당의 총선 공약"이라며 "국민을 위한 경제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경제 정의 구현의 문제가 아니라 민생과 직결됐다. 한국경제의 틀을 바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며 "대기업의 지배구조때문에 우리 국가경쟁력이 저평가되고 있고 배당에 인색하다보니 글로벌 자본의 장기 투자가 마련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도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주장했던 분"이라며 "야당에서도 상법개정안에 대해 분명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대한민국의 경제민주화를 위한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태년 원내대표도 축사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우리 정부는 기업지배구조개선을 국정과제로 삼고 국정상설협의체 합의문에도 내용을 넣었지만 안타깝게 20대 국회에선 법사위 논의도 못해보고 폐기됐다. 이유는 (대기업) 당사자들의 반대와 야당인 미래통합당의 반대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판 뉴딜 과감히 추진하기 위한 규제 개혁을 하는 동시에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투명성과 한국경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제민주화를 둘 다 해내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불참했지만 서면 축사로 상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추 장관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지나 새로운 성장과 번영의 숲으로 가기 위해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재벌개혁은 필수과제"라고 강조했고, 조 위원장도 "공정위는 유관부처로서 소유지배구조 시장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지주회사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회에 계류된 상법 개정안에는 주주권익을 강화하기 위한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세부내용에 대한 이견은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필요성이 인정돼 온 것들이다.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박용진 의원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업지배구조개선 토론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0.6.2/뉴스1




◇주주권익 강화…상법 개정안 주요 내용은?


상법 개정안은 주주권익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를 새롭게 도입하는게 골자다.

주요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가능)△집중투표제(등기이사 선임 시 의결권 전부를 후보 1인에게 몰아줌)△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전자투표 의무화 등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이른바 '경제민주화 상법'은 9개였다. 대표적인 안건이 20대 국회 출범 초기 2016년 발의된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발의안이다. 공동발의에 민주당·(당시)국민의당·정의당 의원 121명이 발의에 동참했다.

박정 의원과 채이배 전 바른미래당 의원 등도 잇달아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을 포함한 상법개정안을 발의했다. 적용 자회사, 소송권 부여 대상 주주 범위 등에서 조금 씩 차이가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같은 세부사항을 두고 쟁점을 좁히지 못했다. 정부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모회사의 출자비율 50% 이상 자회사에 도입하자고 국회에 제안했다.

법무부는 △총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와 사외이사 분리선출 △감사위원 선출시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등 회계감사 투명화 방안도 제시했다. 주주총회의 의결에 전자투표제를 도입해 주주 참여권을 강화하자고도 제언했다.

국회 흐름도 형성됐다. 2019년 2월 당시 여야4당 원내대표 회동으로 '2월 임시국회 회기 안에 상법 개정의 전향적 검토'를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사위 야당 간사였던 김진태 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이 강력히 제동을 걸면서 통과가 무산됐다. 김 전 의원은 "기업을 옥죄고 규제하는 것만 자꾸 나오는데 (경영진에) 그 반대 측면의 무기도 줘야 한다"며 법안 통과를 저지했다.

박 의원은 21대 국회 시작과 함께 그간의 논의를 총 망라한 상법개정안을 발의한다. 이날 토론회에선 한 발 더 나아가 상장 대기업의 집중투표제 의무화, 1주만 가진 주주도 소송을 제기해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주대표 소송 단독주주권화, 전자ㆍ서면투표제 의무화ㆍ노동이사제 도입 등도 언급됐다.

한편 재계에서는 상법개정안 통과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토론회가 열린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객석이 꽉 찼다. 가장 뒷자리 3열은 대기업그룹과 계열사 국회 담당 직원들이 채웠다. 어림잡아 20명이 넘는 '대관' 직원들이 토론회장에 끝까지 남아있었다.

재계10대 기업에 속하는 글로벌기업 대관 담당자는 "코로나19 이후 경제상황이 안좋다. 청와대와 정부가 기업에 활력과 투자 시그널을 주겠다고 하는 와중에 국회에서는 기업들을 더욱 위축시키는 법안을 무리하게 처리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으로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받고 있다. 2020.6.2/뉴스1




'주주권리 강화' 움직임에…재계 "경영권 위협 우려"


2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기업지배구조개선 토론회’. 박 의원은 20대 국회서 폐기된 상법 개정안에는 없었던 이사해임 건의제를 새롭게 꺼냈다. 

부적격자가 이사가 됐을 경우 주주가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상법 개정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업인이 횡령·배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 재판 중 또는 형 확정 후 집행유예 기간 중 이사직을 유지할 수 없다.

이전에 발의됐다가 폐기된 다중대표소송제,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도 담는다. 이날 토론회에선 1주만 가진 주주도 소송을 제기해 이사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주대표 소송 단독주주권화, 노동이사제 도입 등도 안건으로 올랐다.

재계에선 여당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려가 크다. 핵심은 경영권 위협 우려다. 정부는 지배구조 개선을 주장하지만 기업들로서는 자칫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어 이를 방어하는데 불필요한 자금과 역량을 써야 한다고 걱정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도입되면 외국계 자본 등이 합세해 감사위원을 세운 뒤 경영 간섭에 나설 수 있다는 식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에 소송을 낼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나 이사 선출에서 1명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도 경영권 공격에 악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종인의 상법개정안' 여당 주도에 분위기 바뀌나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원, 2016년 민주당 비대위 대표, 그리고 2020년 통합당 비대위원장.

김 위원장은 보수와 진보 진영을 오갔지만 '경제민주화' 이미지는 지켜왔다. 상법 개정안 논의는 보수 야당의 수장이 된 김 위원장이 평생 꾸준히 주장해온 메시지를 177석 거대 의석을 가진 여권이 내는 셈이다.

4·15 총선에서 통합당이 참패한 뒤 취임한 김 위원장의 첫 메시지는 '정책을 선도하는 진취적인 정당'이다.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정치색에 얽매이지 않고 '경제정책' 분야에서 통합당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안 논의가 과거와는 달라질 것이라 예상되는 이유다.

김 위원장은 20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과 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지내던 시절인 2016년 7월 기업 총수 견제기능 강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종인 안'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의무화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감사위원 선임절차 분리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여당이 준비중인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권은 김 위원장이 과거 상법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법안 논의를 촉구하며 압박한다. 또 김 위원장이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시절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내세운 상법 개정안도 같은 내용이라고 몰아붙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김 비대위 대표 시절 민주당 경제민주화 개혁특위에서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완성돼서 당론으로 채택됐다"며 "법안 내용은 박근혜 정부에서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가) 법무부장관 명의로 국무회의에 제출된 것과 대동소이하다"고 말했다.

변 의원은 "통합당에서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던 법"이라며 "그런데도 20대 국회에서 (법안 논의에) 진전을 보이지 못한 아픔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이상훈 참여연대 변호사는 노동자 추천 이사제와 관련 "(김 위원장이 발의했던 법안은) 노동조합 등 근로자 대표가 추천하는 인사를 주주 총회에서 반드시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강제한 형태인 반면 본 법안(박 의원 대표발의)에서는 우리사주 조합의 추천권만을 보장하는 형태라는 것이 큰 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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