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 1번 답안지 '기본소득'…잠룡들이 움직인다

[the300]

김하늬 기자, 이원광 기자 l 2020.06.09 06:00



①이낙연까지 가세한 기본소득…'잠룡'들이 움직인다

‘기본소득’이 정치권 화두가 됐다. 아이디어 차원을 넘는다. 2022년 대권 주자들의 필수 답안지가 됐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때 문재인 후보, 이재명 후보 등이 기본소득의 취지 등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준에서 넘어갔던 것과 차원이 다르다.

기본소득 전도사로 불리는 이재명 경기지사, 재난소득의 불을 댕긴 김경수 경남지사, 전국민 고용보험으로 맞불을 놓은 박원순 서울 시장 등 잠룡 모두 기본소득을 말한다.

여권의 유력 차기 주자인 이낙연 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장도 참전했다. 이 위원장은 “취지를 이해한다”며 발을 걸쳤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거리를 두지 않고 간을 본다. 아젠다를 독점하도록 두진 않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경상남도 코로나19 극복 민생·경제대책본부장으로서 28일 오후 도청 회의실에서 제4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재난지원금 나쁘지 않았다?


기본소득은 △정기적으로 △무조건으로 △개인 단위로 △모두에게 △현금으로 주는 것을 의미한다.

소득 양극화의 심화, 부실한 복지 체계 등의 현실적 문제점과 4차 산업혁명 이후 미래 노동에 대한 고민 속 기본 소득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다만 재원, 복지 제도 정비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중장기 과제로 치부되는 흐름이 강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기본소득 논의에 불을 붙였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전국민에게 지급되면서다.

기본소득과 근본적 차이가 있지만 모두에게 현금을 주는 첫 시도가 갖는 의미는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정부가 지난달 전국민에게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이 지자체를 중심으로 소비진작, 내수활성화 효과가 1달만에 즉시 나타났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복지가 아닌 생계 차원의 ‘기본소득’을 고민하게 된 측면도 있다. 무조건 현금을 주는 것에 부정적이었던 여론도 변했다.

8일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진행한 기본소득제 도입 찬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위해 찬성한다’ 라는 응답이 48.6%,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고 세금이 늘어 반대한다’ 라는 응답이 42.8%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라는 응답은 8.6%로 나타났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본소득 문제' 등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김종인이 잡고 싶은 ‘기본소득’


기본소득 전도사는 이재명 경기지사다. 그는 2017년 대선 경선에서 1호 공약으로 기본소득제를 내건 바 있다.

이 지사는 복지 정책이 아닌 경제 정책으로 기본 소득을 정의한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청년계층이나 취약계층으로 한정지으면 안 된다”며 “재원부담자인 고액납세자 제외나 특정계층 선별로 차등을 두기보다 소액이라도 모두 지급해야 고액납세자의 조세저항과 정책저항을 최소화하면서 기본소득을 확장해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 단위에서 기본소득을 실험한 경험이 있지만 정치권 이슈는 되지 못했다.

기본 소득이 정치권 화두가 된 것은 ‘긴급재난지원금’ ‘재난소득’ 논란부터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제언이 출발점이다.

21대 국회 개원 이후엔 김종인 미래통합 비상대책위원장이 “배고픈 사람이 빵먹을 자유”를 언급하며 기본소득 의제 선점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실질적 자유’의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언급했다. 그는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등 말로만 하는 형식적 자유는 의미가 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사회적 약자가 물질적 자유를 누릴 때 비로소 실질적 자유가 구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속적 포용성장을 위한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보건체제를 재정립하면서 4차 산업혁명 시기에 필요한 기본소득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구상은 복지 체계 정비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된다.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무소속인 홍준표 의원은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제를 시행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28일 오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부천 쿠팡 신선물류센터(제2공장)에 대한 2주간 집합금지 조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與 잠룡들 한목소리 “기본소득 취지 좋다”


복지 체계 정비, 노동 없는 시대에 대한 대비 등 다양한 차원에서 여권 잠룡들도 고민이 깊어진다.

김부겸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4차산업 혁명 시대엔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참여 소득’ 이라는 표현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그는 ”‘120세 인간’이 나온다. 세금이 계속 걷힐 것이라 생각하는데 냉정하게 봐야 한다”며 “김 전 대통령이 얘기했던 ‘생산적 복지’를 진화시켜서 ‘참여소득’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참여 소득'을 통해 대도시 중심의 고비용 사회 속 개인의 생활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동시에 저비용사회로 진입할지 여부에 대한 해법도 동시에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정간 긴급재난지원금 논의와 결정 과정에서 침묵을 지키던 이낙연 위원장도 기본소득제 논의에 올라탔다. 그는 "(기본소득에 관한) 찬반의 논의도 환영한다"며 앞으로 개념과 재원, 실천방안을 논의해보자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제의 개념은 무엇인지, 우리가 추진해온 복지체제를 대체하자는 것인지 보완하자는 것인지, 그 재원 확보 방안과 지속가능한 실천 방안은 무엇인지 등의 논의와 점검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국난극복위 리쇼어링 TF 회의에 참석해 이광재 의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②정치권, 너도나도 "기본소득"…개념은 '제각각'

기본소득이 자타공인 정치권을 지배하는 핵심 ‘아젠다’(의제)로 부상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는 미래를 현재로 앞당겼다. 정치권은 시대 변화에 발 맞추려 힘쓴다. 한 목소리로 기본소득을 외치지만 내용은 사뭇 다르다.

정치권 및 학계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 개념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보편성 △개별성 △정기성 △무조건성 등 원칙을 가진다. 모든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기본소득이 정책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목표’가 새로운 기준이 된다. 전통적 관점에서 복지 체계 개혁은 물론 위기 극복과 혁신 생태계 기반 마련 등에 따라 구분된다.



긴급재난지원금 = '사회적 지분급여'


긴급재난지원금은 국민 삶에 깊숙이 파고들며 가장 대중적인 기본소득으로 인식된다.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모든 가구에게 지급한다는 지점에서 무조건성과 보편성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이라기보다 ‘사회적 지분급여’에 가깝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우선 정기성의 원칙과 거리가 있다. 정부는 약 3개월 간 일시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제공했다. 재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논의가 시작됐으나 정부가 재난지원금으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긴급재난지원금이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맞춰 설계됐기 때문이다. 이에 사용처 역시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맞춰졌다. 또 수도권에 지원금이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는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거주 지역에서만 사용토록 했다.

정부의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이후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매출액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월 3일부터 매주 실시하는 ‘소상공인 매출액 조사’에서 전통시장 매출액 감소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지난달 31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이 장을 보러나온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경남도안, 서울시안= '부의 소득세'


기본소득 논의 초기에 각 지자체에서 나온 대안들은 대체로 ‘부의 소득세’로 분류된다. 경남도는 한 때 전국민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주장하며 보편성은 물론 개별성을 확보했다.

그러면서 재난 기본소득이 필요하지 않은 고소득층에 대해 내년 세금 형태로 다시 거두는 방안을 함께 내놓고 ‘선지급, 후정산’ 원칙을 세웠다. 기본소득을 보편적 복지로만 이해하는 일부 여론을 고려한 것을 풀이된다.

서울시는 중위소득 이하 전 가구에 대해 총 60만원의 ‘재난 긴급생활비’을 지원하는 안을 제안했다. 정기성과 개별성은 물론, 보편성 등과도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가장 소극적인 형태의 재난 기본소득으로 분류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전국민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정의로운 전국민 고용보험제가 전면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풀이된다. 고용보험은 실업자 등에게 현금성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일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주요 정책 목표가 사회 안전망 강화라는 점에서 기본소득과는 거리가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이재명 경기지사(왼쪽)가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제공=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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