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D-DAY…'法'만 있고 '長'이 없다

[the300][공수처 시대]①

이원광 기자 l 2020.07.14 15:29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이달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준비단에 남기명 공수처 준비단장과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사진제공=뉴시스


‘법’(法)만 있고 ‘장’(長)이 없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시한이 도래했으나 국회는 공수처장 ‘후보’도 추천하지 못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달 안으로 출범이 어렵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수처 D-DAY…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조차 못 꾸렸다



여야는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시행일인 15일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조차 꾸리지 못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공수처 출범을 반대하는 취지로 야당 몫 위원 추천에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추천위 위원은 모두 7명으로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변협회장) △여당(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의 교섭단체) 추천 인사 2명 △야당(그 외 교섭단체) 추천 인사 2명 등이다. 현재 원내에서 여당 외 교섭단체는 통합당이 유일하다.

또 공수처법에는 공수처장은 15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 가운데 추천위가 추천한 2명 중에서 대통령이 지명한다고 명시됐다. 추천위가 구성되지 않으면 대통령의 공수처장 지명, 인사청문회 등 인사 절차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다. 당초 민주당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른바 ‘야당 비토권’이었다. 공수처법 6조5항에 따르면 추천위는 위원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다시 말해, 위원 7명 중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는 인사는 공수처장 후보에 오르지도 못한다.

민주당 일각에서 야당 비토권이 공수처 출범에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던 배경이다. 야당이 추천위 구성 자체를 ‘보이콧’ 할 것으로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여야 협상 가능성? 공수처법 입법 과정을 보면…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장석을 점거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이은재 의원이 문희상 국회의장을 막아서고 '성희롱 하지마'라고 외치고 있다. / 사진=뉴스1


공수처 출범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20대 국회 입법 때부터 예고됐다. 지난해 4월 여야는 공수처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두고 국회에서 밤새 몸싸움을 벌였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국회 의안과 앞에서 농성하며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안 발의를 막아섰다.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열릴만한 회의장들을 점거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공수처법안이 전자 입법시스템으로 발의된 후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며 한 차례 폭풍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동물국회’를 거치면서 여야는 상호 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동물국회’는 지난해말 국회 본회의장에서 재현됐다. 민주당은 이른바 ‘4+1’(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 대안신당) 협의체를 앞세워 공수처법의 본회의 의결을 시도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가동한 후 본회의장 의장석 인근에서 농성을 벌였으나 공수처법 의결을 막지 못했다.



文대통령 '1호 공약'…與 "지지자들이 보고 있다"



급한 쪽은 여당이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으로 검찰개혁의 핵심이라고 여당 지지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21대 총선’을 통해 176석(제명·탈당 제외)의 ‘슈퍼 여당’으로 거듭나고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열성 지지층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민주당이 ‘공수처법 개정’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야당이 특정 기간 추천위 위원을 위촉하지 않으면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변협회장, 여당 측 위원 등이 추천위를 구성해 의사 결정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은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만나 “그렇게 안되길 바란다”면서도 “만약 야당이 공수처장 추천을 방해하고 공수처가 출범 못하게 된다면 (법 개정은) 고려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실 가능성이다. 민주당은 지난해말 극단의 대립 정국에서 ‘야당 비토권’을 언급하며 친여 인사가 공수처장이 될 가능성이 적다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법 개정은 스스로 야당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역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단독 국회 운영에 대한 국민 피로감이 높아지는 상황도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연일 '강경 메시지'…野 "기소된 동료들 있기에"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선거법 및 공수처법 통과를 반대하며 황교안 대표 등이 벌여온 농성을 철회하며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야당도 쉽게 물러날 수 없다. 통합당은 지난해부터 일관되게 공수처 출범을 반대해온 상황에서 뚜렷한 명분 없이 입장을 번복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통합당이 공수처 출범 시한이 도래하는 시점에서도 연일 강경 메시지를 내는 배경이다. 

법제사법위원회 통합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이달 13일 민주당의 공수처장 추천위원 선정 소식에 “공수처란 이름의 신(新) 정권보위부 설치법을 강행 처리한 여당이 이제는 설치도 강행하겠다고 제 1야당에 통보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공수처 반대에 앞장섰던 야당 의원들이 대거 기소된 점은 현 통합당 지도부의 운신 폭을 더욱 좁힌다. 서울남부지검 공공수사부는 올해 1월 황교안 전 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24명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또는 약식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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