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치기 정책에 멍드는 민생…'틀에 박힌' 진보의 한계

[the300][대한민국 4.0 II] 진보의 위기-보수의 자격【4】-①

정현수 기자, 권혜민 기자, 김상준 기자, 유효송 기자 l 2020.11.15 13:41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전태일 50주기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11.14/뉴스1

지난 14일 민주노총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었다. 야권은 "방역도 편가르기를 한다"며 반발했다. 정부와 여당이 보수단체의 광화문집회, 개천절집회를 대하는 태도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자제 권고에도 집회를 강행했다.

'편가르기'. 어느덧 이번 정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됐다. 정부는 이 단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야권의 정쟁용 비판으로 치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서 추진된 정책 상당수가 계층간 갈등을 유발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정책에서 보여준 '틀에 박힌 진보'



지난 7월 30일 '임대차3법'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의 법적근거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단독으로 이 법안을 처리했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를 위한 제도다. 세입자의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 2년 계약을 연장토록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전세물량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전셋값은 폭등했고 집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임대차3법은 당연히 제정됐어야 할 법이긴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며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진영논리에 입각한 밀어붙이기식 입법전쟁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입법과정에서 우려가 있었지만 민주당은 귀를 닫았다.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전제만 생각했다. 상임위원회와 본회의까지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수진영의 반대는 발목잡기로 규정했다. 입법에는 성공했지만 결과까진 내다보지 못했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서울에서 10억원의 전세를 사는 사람과 5억원의 아파트를 가진 사람 중 누구의 권리를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는데 너무나 틀에 박힌 진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시대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게 문재인정권의 문제"라고 밝혔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80회국회(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적 300인, 재석187인, 찬성185인, 기권2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0.7.30/뉴스1




어느덧 사라진 단어, 소득주도성장



부동산정책과 결은 다르지만 소득주도성장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말그대로 소득을 높여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내세운 대표적인 수단이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부의 의지대로 최저임금은 많이 올랐다.

저임금 근로자를 위한다는 명분과 이를 전체 경제성장으로 연결시킨다는 희망까지 겹쳐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정부 초창기 거의 모든 정책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주는 사업주도 최저임금을 받는 저임금 근로자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다.

최저임금 부담을 느낀 소상공인은 최저임금 대상인 아르바이트생의 자리 자체를 줄였다. '을들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최저임금 인상 후 소득통계가 나올 때마다 논란이 반복되는 등 국가 전체의 소득재분배 효과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졌다. 대한민국 국민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극명하게 갈라졌다. 범진보진영에서 기득권 엘리트인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은 명확했다.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은 진통 끝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올해 총선을 거치면서 계층 갈등은 더 심화됐다. 정치권이 선거 국면에서 이를 활용한 측면도 없지 않다. 통합은 요원했고 갈등만 남았다. 이번 정부 계층 갈등의 한 요소였던 탈원전은 다시 정쟁의 한가운데 섰다. 월성1호기 문제는 탈원전 이슈를 넘어 검찰개혁의 재료로도 활용되고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과거 학생운동을 할 때 한국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을 바라보는 소위 '마음의 습관' 같은 게 있다"며 "이걸 포기하면 마치 정권의 기반이 흔들린다고 생각해 자존심 싸움처럼 돼 버린다"고 말했다.
(세종=뉴스1) 장수영 기자 = 검찰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 중인 5일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에서 직원들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2020.11.5/뉴스1




'핀셋 정책'의 면죄부



세법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정부와 여당은 세법을 개편할 때마다 '핀셋'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고소득자와 다주택자 등 '가진 사람'들에 한해 증세를 한다는 것이다.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 8월에만 하더라도 3주택자 이상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을 올리는 내용의 종부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개정안에는 현행 42%인 소득세 최고세율을 45%로 올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특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혁보다는 제도 개혁으로 가야 한다"며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있다보면 갈등이 중첩되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하나씩 제도 개혁을 해나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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