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40대만 박영선을 더 지지하나, 민심 요동치는데 굳건한 이유는?

[the300][종진's 종소리]

박종진 l 2021.03.26 18:02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4.7재보궐선거 공식선거운동 둘째 날인 26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앞에서 유세를 갖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같은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오른쪽)가 서울 용산구 용문시장 네거리에서 유세를 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1.3.26/뉴스1


40대만 희한하다. 민심의 역린을 건드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로 문재인 정권 지지율이 요동치는데 40대는 굳건하다. 보궐선거를 코앞에 둔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들만 튄다.



여기도 저기도 '40대만' 거꾸로 나오는 여론조사


최근 공표된 여론조사(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살펴보면 대부분 그렇다. 이달 19~20일 전국 유권자 1007명을 조사(오차범위 ±3.1%p)해 21일 공표된 TBS-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대통령 국정수행평가 결과는 부정 63%, 긍정 34%였다. 전 연령층에서 부정평가가 60~70%대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40대만 긍정평가가 50.2%로 부정평가(48.8%)를 앞섰다.

같은 시기 서울거주 유권자 1002명을 조사(오차범위 ±3.1%p)한 중앙일보-입소스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36.8%,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50.6%로 모든 연령층에서 오 후보가 우세했지만 유독 40대만 박 후보 52.4%, 오 후보 36.9%로 반대였다.

야권 단일화 이후 첫 조사(24일 서울거주 유권자 806명 조사, 오차범위 ±3.5%p)였던 오마이뉴스-리얼미터 발표(25일)에서도 역시 그랬다. ‘박영선 36.5%대 오세훈 55%’로 모든 연령층에서 오 후보가 우위를 보였지만 40대만 박 후보 57.9%, 오 후보 34.7%로 뒤집혔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평가도 같은 양상이었다. 잘함 35%, 잘못함 61.3%로 집계됐지만 오직 40대만 잘한다는 평가(56.5%)가 과반을 훌쩍 넘었다.

한국갤럽 기준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최저 지지율(34%)을 기록한 26일 발표(1001명 조사, 오차범위 ±3.1%p)에서도 오로지 40대만 긍정평가(49%)가 부정평가(48%)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9일 오후 개강시즌을 맞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 거리가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2021.3.19/뉴스1



전대협 세대 이은 '한총련 세대'…전투적 투쟁경험부터 학생운동 몰락까지


지금 40대는 이른바 ‘97세대’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 선배들인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가 전대협 세대라면 이들은 한총련 세대다. 고도로 조직화된 학생운동을 경험한 동시에 운동권의 몰락도 고스란히 겪었다. 선배들이 87년 민주화 투쟁, 직선제 쟁취로 상징되는 ‘승리’를 맛봤다면 97세대는 해체와 혼란, 실패에 더 익숙하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몰락, 문민정부와 김대중 정부 출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 20대를 보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비교적 명쾌한 전선에서 선배들이 싸웠다면 97세대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탈이념과 포스트모던의 물결 속에서 어지러웠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은 선배들보다 더 많이 들었지만 대중적 기반은 점점 잃어갔다. 96년 연세대 사태와 97년 한양대 프락치 사건 등을 분수령으로 97세대의 학생운동은 급속히 쇠락했다.

대중적 지지 확보에 고전한 97세대는 졸업 이후 정치세력화에서 86세대에 줄곧 치였다. 제도권 정치에서 존재감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86세대들은 30~40대 시절인 제17대 총선에서부터 국회로 쏟아져 들어갔다. 현재 제21대 국회에서 이들 50대는 177명으로 59%를 차지한다. 반면 40대는 고작 38명(12.7%)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도 86세대가 여전히 핵심이다.



97세대가 '가장 진보' 시각도…다양한 진보 담론 90년대에 심화·확장


일부에서는 86세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97세대의 이 같은 양상을 세대 종속적 특성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나 동료에게 ‘부채의식’을 느끼는 마지막 세대라는 점도 40대의 성향을 설명하는 근거로 쓰인다. 그러나 이런 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50대가 이미 현 정권에 부정적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보면 가장 진보적인 게 40대라는 말이 나온다. 86세대를 따라가며 영향 받는 수준이 아니라 90년대 학번들의 차별성에 주목하는 시각이다. 사실 진보 이론에 ‘학습’을 제대로 한건 97세대라는 주장이다. 실제 페미니즘과 환경·생태운동, 이주노동자, 국제연대 등 진보담론의 다양한 주제들은 90년대에 본격화됐다. 군부독재 아래서 상대적으로 단순했던(혹은 집중됐던) 진보운동의 방향이 97세대를 거치면서 심화하고 확장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2030세대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로 연결되는 2000년대 이후부터는 ‘위기’가 일상화되면서 생존이 최우선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시위와 토론, 세미나, 대학생활의 낭만 따위보다 학점과 취업이 먼저였다.

= 2017년 3월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 승리! 제20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2017.3.11/뉴스1



'서태지 세대'이기도…탈권위 문화, "촛불집회 만든 상상력"


97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도 고려해야 한다. 학생운동 등의 관점으로만은 대학을 다니지 않은 40대나 운동권과 전혀 무관하게 대학생활을 마친 이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97세대는 서태지와 X세대로 상징된다. 문화적 풍요를 경험한 첫 세대로도 불린다. 탈권위와 개인주의에 공감한다. 박성민 정치컨설팅민 대표는 “문화적으로 자유로워진 90년대를 살았기 때문에 보수 정당에 문화적 거부감이 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도 문화로 소비한다. 팬덤 문화를 탄생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게 바로 이들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지상파 출구조사에서 97세대 득표율은 60% 안팎을 기록했다.

집회도 비장함을 벗기 시작했다. 풍자와 해학, 패러디 가면이 등장하고 기발한 문구가 피켓을 수놓았다. 그 결정체가 촛불시위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를 시작으로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반대, 2008년 광우병 집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까지 촛불시위를 이끌어온 주력부대가 97세대다.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는 “촛불은 86세대의 상상력이 아니다”며 “서태지를 경험한 97세대의 상상력”이라고 진단했다.



민주당 좋아서 아닌 '국민의힘 싫어서'…곧 야권의 숙제


물론 40대가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고 해서 현재 집권세력이 ‘진보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는 보수 야당을 향한 뿌리 깊은 거부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하다. 97세대의 이 같은 종합적 특성들이 차마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 없게 만든다는 얘기다.

야권의 입장에서는 역설적으로 어떻게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변해야할 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한 국민의힘 초선의원은 “지금 야당 지지도가 높은 게 정권이 못해서이지 우리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니다”고 단언했다. 변화무쌍한 대한민국 정치 환경에서 1년은 긴 시간이다.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야권이 갈 길은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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