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앞 분노한 '민심'에 다급해졌나…'벼락처방' 쏟아내는 정권

[the300][뉴스분석]

박종진 l 2021.03.29 17:27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마스크에 '부동산 부패청산'이 쓰여져 있다. 2021.3.29/뉴스1


정부·여당이 다급해졌다. 전세금 인상 논란에 휩싸인 지 하루 만에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29일 전격 경질되고 문재인 대통령은 생중계로 또 한 번 ‘적폐 청산’을 언급하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부당이익 환수 소급적용 추진, 모든 공직자 재산등록, 부동산거래분석원 설치 등 초유의 대책들이 쏟아졌다. 선거가 코앞인데 민심이반이 가속화되자 급기야 ‘뒤집기 정책’도 불사한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공시지가 인상률 제한 카드를 꺼낸데 이어 여당 정책위의장이 대출규제 완화 방침도 밝혔다.

당근도 채찍도 뭐든 휘두를 기세지만 선거를 앞둔 이 같은 ‘벼락처방’들은 혼란을 가중시켜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뒤늦은 정책 수정 움직임도 너무 늦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로남불' 혹은 '착한 임대인' 김상조, '현실 무시'가 본질


사실 ‘김상조 경질‘만 곱씹어도 문제의 원인은 보인다. 여당 지지층의 안타까움대로 김 전 실장은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준 ’착한 임대인‘인 동시에 정권 비판의 대명사처럼 된 ’내로남불‘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양쪽의 옹호와 비판보다 본질은 청와대의 해명에 있다. 청와대는 김 전 실장이 세 들어 살던 서울 금호동 아파트 보증금이 오르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본인이 세 줬던 청담동 전세금을 올렸다고 해명했다. 금호동 임대인은 나쁜 사람인가. 그 역시 사정이 있을 터다.

정권의 정책수장조차 몸으로 겪은 문제지만 정책에서 이런 고민은 읽히지 않았다. 집주인과 세입자, 9억원 이하와 9억원 초과, 강남과 비강남 같은 끊임없는 갈라치기 논란만 낳았다.

갈라치기는 선동이지만 서로가 연결되는 시장경제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기본원리를 무시(혹은 무지)했다. 공시지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곳곳에서 세금폭탄의 비명이 나오자 김태년 민주당 대표대행은 “전체 90%의 세금 부담은 줄어든다”고 일축했지만 집주인들의 세금부담은 결국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4.7재보궐선거 공식선거운동 첫 주말인 27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가 서울 중랑구 동원시장 인근에서 유세 후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같은날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오른쪽)가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선거 유세에 앞서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3.27/뉴스1



강경 대책 쏟아내는데…"이해충돌방지법? 더 혼란스러울 수도"


선거를 앞둔 초강경 대책에 실효성과 타당성도 의문이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이라는 보완책으로 추진한다고는 하나 위헌 논란 등으로 국회 심사과정에서도 제외된 투기이익 환수 소급적용을 재차 들고 나온 것도 ‘분노 달래기‘용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도 있는데 부동산거래분석원은 왜 안 되느냐는 식의 접근도 곤란하다. 허가를 받아 영업하는 금융회사를 감시하는 일과 개인의 거래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모든 공직자의 재산을 등록하자는 발상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이날 “공직자 부패의 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특효약처럼 강조한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도 그렇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문구 하나하나의 모호성에 골머리를 앓아온 법안을 군사 작전하듯 밀어붙인다면 피해는 국민이 본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국민의 분노를 이유로 무리한 대책을 책임감 없이 마구 쏟아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마치 그동안은 법과 제도가 없어서 부패와 비리가 근절되지 않은 것처럼 호도하는 것 역시 문제다. 이원재 카이스트 교수는 “국민의 명령 등을 명분으로 우리는 어떠한 기존 법과 제도를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식이 가장 안 좋은 방향”이라며 “이해충돌방지법의 경우도 전문가적인 지성을 바탕으로 정교함과 섬세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를 더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반부패정책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1.3.29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이제와서 대출규제 완화?…"이미 올라버린 집값, 방법 없다"


뒤집기 대책조차 이미 늦었다. 박 후보는 세금 인상을 막기 위해 9억원 이하 주택의 공시지가 인상률을 10%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건의하겠다고 했고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이날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를 중심으로 대출규제를 풀어주는 방향을 제시했다.

세금과 규제, 양축을 바탕으로 고강도 수요 억제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의 4년 부동산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다. 그만큼 정권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얘기겠지만 ‘지금까지는 뭐했느냐‘는 비난부터 나온다.

선거용 대책으로 진정성을 의심받는다는 얘기다. 홍 정책위의장은 이날 “대출규제 조치가 내 집 마련을 희망하는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 형성에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여러 시민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현금 부자만 집 살 수 있다는 아우성이 빗발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선거 직전에서야 ‘들렸다’는 고백과 다름없다.

장덕진 교수는 “민주당은 섣부른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이번 보궐선거뿐만 아니라 앞으로 여러 선거에서 장기간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세금 문제는 어찌어찌 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이미 올라버린 집값은 방법이 없다”고 진단했다.

전반적인 정책 재검토가 아닌 임기응변식 수정에 불과해 또 다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집값 상승요인은 여전한데 대출규제 완화 신호가 자칫 시장을 자극할 수도 있어서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1.3.19/뉴스1



정권 '총체적 위기'…"오만했다" 뒤늦은 반성


삶과 가장 밀접한 부동산 문제로 민심의 인내가 허물어졌을 뿐 정권의 총체적 위기라는 진단도 적지 않다. 최악의 일자리 성적표와 누더기가 된 검찰개혁, 백신 논란에 빠진 코로나19(COVID-19) 방역, 계속되는 북한의 핵 위협 등 각 분야의 종합 평가가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민 대표는 “메신저(대통령과 집권여당)가 신뢰를 잃어서 어떤 말을 내놓더라도 메시지가 안 들리는 상황”이라고 봤다.

이날 민주당 중앙선거대책회의에서 나온 자성은 그래서 뼈아프다. “똑똑한 척만 했다. 오만과 무감각이 국민 마음에 상처를 줬다. 정책도 정책이지만 이런 잘못된 자세와 태도가 국민 불신의 근본 원인이었다” (김종민 최고위원)

너무 늦었는지, 문 대통령의 반부패정책협의회 발언대로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심판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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