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전 역전승 재연 꿈꿨지만…생태탕·페라가모만 남은 與

[the300]1995년 역전승 재연 꿈꿔…정권심판론 간과, 흑색선전 일변도에 유권자 '식상'

박소연 l 2021.04.08 20:49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발산역과 등촌역 일대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민주당이 1995년 역전승의 추억에 사로잡혀 2021년에 패했다."

4·7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도적인 대승을 거두며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탈환한 가운데 정치권에서 이같은 분석이 제기된다.


1995년 역전승 재연 꿈꾼 민주당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턴조선호텔에서 열린 자신의 전기 '나의 인생 국민에게' 발간 축하연에서 이낙연 더불민주당 대표 축사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뉴스1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찬종 후보는 조순 후보에게 20%포인트 이상 앞서다 '유신 찬양전력'으로 청문회에서 거짓말한 것이 드러나며 패배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권이 같은 방식의 역전승을 꿈꿨다는 것은 여러 차례 확인됐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9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유튜브 방송에서 "1995년 서울시장 선거가 거의 희망이 없었는데 박찬종이 유신 찬양 글에 대해 사과하면 됐을 것을 잡아떼고 거짓말하다가 선거 열흘 남기고 폭망했다"면서 이번 서울시장도 이와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밝혔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 전 대표의 이러한 발언을 수차례 인용하며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의 처가 소유 내곡동 땅 의혹을 제기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1995년 서울시장 선거 사례를 언급하며 "현재까지 오 후보가 세 번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2007년처럼 흐른 선거…與, 정권심판론 간과 패착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가 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 1층에서 입장 발표를 한 뒤 굳은 표정으로 당사를 떠나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러나 민심은 여당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선거 전날까지 내곡동 생태탕집 아들이 목격한 신발 브랜드와 색깔이 최대 이슈가 될 정도로 민주당이 네거티브 공세에 올인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57.50%를 득표하며 39.18%를 얻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8.32%포인트 격차로 압도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민주당이 '정권심판론'을 간과했다는 분석이 많다. 상대 후보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는 전략은 경우에 따라 효과를 발휘하지만, 이번처럼 집값 폭등에 이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부동산 내로남불로 민심 이반이 심각한 상황에선 민주당이 실정을 조기에 인정하고 정책으로 유권자를 감동시키는 정공법을 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곡동 의혹 제기는 오 후보에 거짓말 프레임을 씌울 순 있었지만 그를 투기꾼으로 만들진 못했다.

'거짓말'이 선거에서 만능 키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2007년 대선에서 입증되기도 했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역대 최대 표차로 제치고 당선됐다. 당시 여당은 이명박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에 힘을 쓰지 못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이번 선거는 2007년처럼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기류로 흘렀는데 민주당은 마지막 순간까지 오세훈 거짓말 만들기에 집착했다"며 "조순이 박찬종을 뒤집은 추억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분석했다.


식상해진 與 네거티브 전략…정책승부 아쉬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오른쪽)가 29일 밤 서울 상암동 MBC에서 열린 MBC 100분 토론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민주당의 내곡동 의혹 제기는 막판에 본질과 거리가 먼 생태탕집 방문, 페라가모 구두 논란 등으로 번지며 서울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스윙보터들이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친여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나 일부 커뮤니티와 지나치게 밀착된 모습도 일부 극렬 지지층을 제외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2002년 김대업을 등장시키고 2007년 BBK, 2011년 내곡동을 거론하더니 10년 만에 내곡동을 또 들고 나왔다"며 "과거 20년간 민주당이 보여준 흑색선전 DNA에 유권자들이 식상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그는 "자영업자들이 생계의 위기를 겪고 젊은이들이 일자리 부족에 상실감을 느끼고 집값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팽배한 상황에 흑색선전에 집착하는 민주당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며 "박영선이 그리는 서울시의 미래를 제시하는 데 집중했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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