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이민가고 싶은 정치판, 그리고 '플랫폼 국감'

[the300]

박종진 l 2021.09.16 04:42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이민 가고 싶다" 평소 존경하는 한 석학이 요즘 대한민국 정치판을 이야기하다가 격분했다. 기자에게 "독재 정권 시절에도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지금이 암울하다는 얘기다. 품격과 염치가 사라지고 상식과 몰상식의 경계조차 모호해지는 세상이다.

101세 철학자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문재인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자 범여권 측 인사가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공격했다. 사실 놀랄 것도 없다. 자신을 비판하면 집회하는 국민도 '살인자'로 규정하고, 자신의 뜻대로 안 되면 국회의장도 '개XX'라고 욕하고, 다른 편에 섰다는 이유로 장군 출신에게 '별값이 X값'이라고 조롱하는 마당 아닌가.

정작 김 교수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서는 대응하지 않았다. 주역은 방이유취 물이군분 길흉생의(方以類聚 物以群分 吉凶生矣)라고 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길흉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

#정몽구 회장은 2009년 부인 이정화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자택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 등을 모두 남성으로 바꿨다. 극단적 펜스룰이란 시각도 있지만 혹시 모를 추문을 방지하고 품격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던 셈이다.

고 이건희 회장이 일찍이 일갈했듯 '4류 정치'보다는 '2류 기업'이 개인이든 회사든 품격 지키기에는 더 열심이었다. 기업의 품격이란 업의 본질에 충실할 때 나온다. 잘 투자해서 돈 많이 벌어 세금 충실히 내고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게 기업의 품격이요, 역할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 그림으로 수주해와 세운 울산 조선소에는 아직도 곳곳에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가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붙어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3년간 청년일자리 3만개 창출을 약속했다. 미래세대와 인재에 대한 투자만큼은 아무리 어려워도 지속해온 삼성의 전통을 생각하면 이 부회장의 공언은 쇼가 아니다.

사업보국의 기업가 정신은 대한민국을 먹여 살려온 원동력이다. 청와대가 아무리 홍보해도 K-조선의 기적은 뼈를 깎는 기업의 노력 덕분이었음을 다 안다. 정치 때문에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은 있어도 기업 때문에 나라를 등지겠다는 사람은 못 봤다.

#2021년 국감은 '플랫폼 국감'이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 거대 IT(정보기술) 플랫폼 기업을 겨냥하는 증인 신청이 쏟아지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 투자책임자 등의 소환도 줄줄이 예고됐다. 공정위, 금융위 등 당국도 금산분리 위반 등 각종 논란을 정조준하고 있다.

대선을 앞둔 플랫폼 때리기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갑질'로 상징되는 플랫폼 기업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올 것이 왔다는 얘기다. 김범수 의장 말대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공동체에 책임을 다하는 기업의 품격을 고민할 때다.

다들 악착같이 자기만 챙길 때 자신을 내던진 윤희숙 전 의원은 사퇴안이 처리되던 날 스스로 "내가 보고 싶은 정치인"이라 말했다. 플랫폼 공룡을 세운 김범수, 이해진 등은 어떤 기업가를 보고 싶은 건가.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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