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예우" 전사·유공자 유해봉환 급증 뒤에 '文의 집념'

김성휘 기자 l 2021.09.26 06:40
(로이터=뉴스1) =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히캄 공군기지에서 열린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에서 공군1호기로 봉송되는 유해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C) 로이터=뉴스1



지난 23일 밤 경기성남 서울공항. 대통령전용기에서 내린 것은 문재인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고(故) 김석주 일병, 고 정환조 일병 등 70여년 전 한국전쟁에서 숨진 전사자의 유해가 작은 관에 담겨 고국으로 귀환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6구의 다른 전사자 유해도 함께였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국전쟁 전사자 또는 독립유공자의 유해 발굴과 국내 봉환이 부쩍 늘었다. 유전자 감식 등 과학의 힘에 정부 차원의 노력이 더해진 결과다. 특히 정부 측면에선 문 대통령의 집념에 가까운 관심이 결정적이었다.



文, 국군전사자 봉환식 주관 세차례


앞서 2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는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이 열렸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해외에서 유해 인수식을 주관한 것은 처음이다.

김 일병, 정 일병의 유해가 잠든 작은 관은 대통령전용기의 좌석에 놓여 문 대통령과 함께 돌아왔다. 나머지 66구는 신원확인 절차에 돌입했다. 이번에 미군 유해 6구도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상호' 인수식이다.

문 대통령이 국군전사자 유해 봉환식을 주관한 것은 세 번째다. 취임 이듬해인 2018년, 국군의날 70주년을 맞아 10월1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같은 곳에서 6.25 전쟁 70주년 행사가 열렸고 이때 유해 봉환식도 함께 진행했다. 1년뒤인 올해, 같은 장소에서 다시 유해 봉환식을 가졌다.
22일(현지시각) 미국 히캄 공군기지에서 한미 유해 상호 인수식을 마친 국군유해가 공군1호기 좌석에 안치돼 있다. (청와대 제공) 2021.9.23/뉴스1


유해봉환을 이 정부에서 시작한 건 아니다. 국방부유해감식단(국유단)은 DPAA(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기관)의 전신인 JPAC(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와 이미 2008년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DPAA는 2010년부터는 한국전 미수습 유해 전담팀을 구성했다.

2012년 이후 현재까지 307구의 6·25 전쟁 전사자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 가운데 16명의 신원이 최종 확인됐다. 한반도에 묻혀있던 미군 유해는 같은 기간 25구가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온 307구 가운데 91%인 280구가 문재인정부 시기 봉환됐다. 미국으로 돌아간 미군유해 25구 중 절반 넘는 13구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송환됐다.



"끝까지 잊지않고 찾는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호국영웅을 끝까지 찾아내 예우하고 기억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전사자 유가족들에게는 유전자 정보를 남겨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런 노력에다 2018~2019년에 걸친 남북미 평화 무드는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을 촉진했다.

이번에 고국에 온 2명 전사자는 모두 미 7사단 32연대 소속 카투사로 복무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 김 일병은 2018년 함경남도 장진읍 신흥리에서 북한이 단독으로 진행한 발굴에서 찾아냈다. 미군 유해들과 함께 하와이로 보내졌다가 한국인으로 판명돼 국유단이 다시 정밀감식을 했다. 그 결과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고 정 일병은 그에 앞서 1990~1994년 사이 역시 북한의 단독 발굴작업에서 발견됐다. 김 일병은 172번째, 정 일병은 173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국군 유해다.
2020년, 미국 하와이 진주만-히캄 합동기지(JBPHH)에서 출발해 6·25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를 모신 KC-330 공중급유기 시그너스가 24일 오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해 공군 전투기 6대의 엄호 비행을 받고 있다. 이번에 봉환되는 국군 전사자 유해 147구는 지난 1990~1994년 북한 개천시, 운산군, 장진호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 208개 상자와 1차 북미정상회담 후 2018년에 미국으로 송환됐던 유해 55개 상자 중, 2차례의 한·미 공동감식을 거쳐 국군 전사자로 판정된 유해다. (국방부 제공) 2020.6.24/뉴스1




묵념·공중엄호…전사자 예우·유가족 위로


발굴, 신원확인과 함께 봉환식의 예우도 역대급으로 노력했다는 게 관계자들 증언이다. 문 대통령은 2018년 봉환식에서 64구 유해가 각각 담긴 상자에 직접 참전기장을 달고 잠시 묵념하는 추모를 64회 반복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국군의날 70주년 오찬에서 "오늘 저는 6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국군 전사자 예순 네 분의 유해를 영접했다"며 "평화를 위한 숭고한 희생에 보답하는 길은 끝까지 잊지 않고, 찾아내고 기리는 일"이라 말했다.

23일에도 대통령전용기와 군 공중급유기 시그너스(KC-330)가 함께 비행하며 유해를 실어왔다. 이들이 우리나라 영공에 진입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F-15K 전투기 4대가 출격해 좌우에서 공중엄호에 나섰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많은 인원이 탑승하지 않았지만 고 김석주 일병의 관이 안치된 좌석 뒷자리엔 간호사관학교 61기 김혜수 소위가 앉아 눈길을 끌었다. 그는 고인의 외증손녀로 현재 국군홍천병원에서 복무하고 있다고 정부는 밝혔다.
(서울=뉴스1) =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3일 밤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서 국군 전사자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21.9.24/뉴스1




남북미 대화협력 '실증' 의미도


전사자 유해 발굴과 본국 봉환은 국내 보훈정책인 것은 물론, 미국과 북한에 대화와 협력, 평화를 강조하는 의미도 있다. 불가능할 것같던 유해 발굴과 신원조회까지 남북미가 협력하면 가능하다는 사례다.

특히 비무장지대는 격전지였던 만큼 전사자 유해가 많지만 남북 긴장국면에선 발굴 시도조차 어려운 민감한 지역이다. 문재인정부 시기엔 화살머리고지를 포함, 이런 곳에서 유해를 찾아내 신원을 확인하고 고국에 돌려보낼 수 있게 됐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강조한 '종전선언'이 대통령의 설명대로 "정치적 선언"이라면, 유해발굴은 종전의 실제 결과인 동시에 인도주의 차원에서 의미가 적잖은 성과인 셈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유해봉환에도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카자흐스탄에 잠든 홍범도 장군 유해가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국내 귀환한 게 대표적이다.
(서울=뉴스1) =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21.9.22/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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