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도 '레트로' 맞나…오부치와 합의한 DJ, 3년후 고민

[외교 잠금해제]

김지훈 l 2021.12.01 17:04
1998년10월12일 대통령 지시사항과 2001년7월10일 대통령 지시사항. 붉은 테두리는 방일 성과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한 부분. /자료=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금번 방일을 계기로 한·일관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음. 앞으로 각부 장관은 금번 방일의 성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 시행에 만전을 기할 것."(1998년10월12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가 한·일관계를 긴장시키고 어렵게 만들고 있음. 일본의 교과서 왜곡문제는 일본의 국내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과거 인식에 대한 문제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2001년7월10일)

30일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 대통령비서실은 1998년10월12일 국무회의 당시 대통령 지시사항과 2001년7월10일 대통령 지시사항을 담은 문건을 이렇게 작성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여야 대선후보가 '진의 찾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인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체결일(1998년10월8일) 나흘후 국무회의를 열고 한·일관계가 급진전된다며 각 부에 후속조치를 지시했다.

그런데 2년9개월 뒤엔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문제시했다. 2001년은 일본 우익 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위안부 문제와 아시아 침략사실을 왜곡한 방향으로 집필한 교과서가 일본 정부의 검정 절차를 통과(1차 교과서 파동)한 해였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나온 일본측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의미있는 문구였는지 논란이 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야권에선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와 비교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비교할 수 없는 업적을 일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등으로 한일 관계는 급진전된 측면도 있다.특히 독도, 위안부, 징용공 강제배상 판결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경색된 와중에 대선이 임박해지자 20여년 전 양국간 합의문을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재조명했다.

(목포=뉴스1) 황희규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11일 오전 전남 목포시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찾아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등신대와 악수하고 있다. 2021.11.11/뉴스1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가 합의한 선언이다.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개 분야의 협력원칙을 포함한 11개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속 문서인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위한 행동계획'(Action Plan)은 43개 항목의 구체적인 실천 과제가 들어있다.

특히 외교가에서는 합의문 2항의 내용에 주목해 왔다. 2항에는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어 같은 조항에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했다"는 표현도 나온다. 즉, 일본의 공식적인 반성 사죄가 합의문에 명시되는 동시에 상호간 미래지향적 관계에 대한 의지도 함께 실린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이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지난 11일 페이스북에서 "안타깝게도 같은 민주당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지난 4년 한일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며 "제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일관계 개선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두 나라 정치 지도자들만 결심한다면 김대중-오부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4일 오후 전남 신안군 하의면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아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1.8.14/뉴스1

문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또 다른 한축인 과거사 인식 문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12일 페이스북에서 "원인과 결과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비판했다. 12일 페이스북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사를 덮고 미래로 가자고 한 게 아니라 한국이 일본에 대해 과거를 똑바로 인식한 걸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이라며 윤 후보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발언을 평가 절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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