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좀비정치가 덮친 '지금 우리 대선은'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정진우 l 2022.02.09 03:3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시스] 국회사진기자단 = 3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린 방송 3사 합동 초청 '2022 대선 후보 토론'에 앞서 후보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2022.02.03.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2022년 3월 9일.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號)를 끌고 갈 선장이 한달 후 결정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여·야 후보들은 분초를 나눠 전국 각지를 돌며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대선이 한달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이들에게서 국가의 미래를 위한 생산적인 비전 경쟁은 보이지 않는다. 상대 후보를 물어 뜯는 모습만 눈에 띈다. 특히 여야 할 것 없이 대통령이라는 제왕적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진영 정치에 몰두할 뿐이다. 각당 후보 캠프에서 매일 쏟아지는 선거용 메시지에서 '증오 마케팅'만 읽히는 이유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진영 간 말싸움은 더욱 격해지고 정책 경쟁과 토론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각 당 후보들이 국민들에게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나는 무조건 옳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는 등의 지지층 결속 구호만 기억에 남는다. 결국 상대방의 의견은 없애야할 공격 대상이 된다.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이런 현실을 '좀비(Zombie) 정치'라고 지적한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다. 머리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생각을 못하고 맹목적으로 움직인다. 사고 능력이 없어 소통도 안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들을 물어뜯어 자신처럼 만들려고 하는 본능이 발휘될 땐 무섭게 돌변한다.

소통을 거부하면서 상대를 물어뜯으려고만 하는 우리 정치와 닮았다. 여의도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좀비가 돼 "우리 후보는 선(善)이고, 상대 후보는 악(惡)"이라고 규정한 후 무조건 상대를 물어 뜯는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거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우리 편이 얘기하는 건 진실이고, 상대편이 말하는 건 거짓"이라고 강조할 뿐이다. 각 당에 대선은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이겨야 하는 가장 중요한 선거이다 보니 우리 편 생각과 다른 주장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다.

대선이 끝나면 어떻게 될까.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들에게는 갈등과 분열의 상처만 남을 것이다. 특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정서가 팽배해 질 것이다. 내로남불을 만드는 주범은 편 가르기다. 우리편이 선거에서 이기면 무슨 짓을 해도 거침이 없어진다. 게다가 지지자들의 여론만 크게 들린다. 대한민국은 결국 '적극적 지지자'와 '무조건 반대자'로 양분될 것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이런 좀비정치의 결말이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는 후보는 분명 당선 첫 일성으로 '국민통합'을 꺼낼 것이다. "지금까지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계시겠지만, 그분들의 대통령도 되겠습니다"며 대한민국을 하나로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을 것이다. 모든 대통령이 당선 후 그랬다.

하지만 좀비정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건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된다. 대화와 타협을 하면서 차이를 품을 줄 알아야 국민통합에 이를 수 있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고 증오 마케팅을 버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대선까지 한 달, 과연 대한민국에서 좀비정치는 사라질 수 있을까.

정치부 정진우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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