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43일전 만나는 尹당선인-文대통령…최악의 충돌 피했다

[the300]

박종진 l 2022.03.27 16:31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워크샵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2.3.26/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마침내 문재인 대통령과 28일 회동한다. 정권 이양기 유례없는 신·구권력의 정면충돌 양상 끝에 돌파구를 열었다. 역대 당선인과 현직 대통령의 가장 늦은 만남이다. 안팎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시급한 민생 대응과 새 정부의 국정과제 수립 등에서 비로소 순항을 기대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28일 만찬 회동 사실을 동시 발표했다. 16일 예정됐던 오찬 회동이 당일 아침 돌연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이후 다시 일정을 잡았다. 9일 대선이 치러진 후 19일 만이자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43일 전이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당선인과 현직 대통령의 회동은 늦어도 열흘 안에 이뤄졌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의 회동이 선거를 치른 뒤 9일 만에 이뤄진 게 가장 늦었을 정도다.



유례없는 갈등 끝에 靑 "허심탄회한 대화"→尹측 "의제 구분없이 만나자"


그만큼 대립이 첨예했다. 청와대 이전 문제에 문 대통령이 안보 공백을 언급하며 제동을 걸었고 감사원 감사위원, 선관위 상임위원, 한국은행 총재 인사 등을 놓고 연이어 충돌했다. 윤 당선인은 24일 "원칙적으로 차기 정부와 다년간 일해야 할 사람을 마지막에 인사조치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권 폐지 등 당선인의 검찰 공약에 정면으로 반박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경찰에 인수위 업무보고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하는 등 그야말로 전방위적 연쇄 충돌이 계속됐다.

하지만 동시에 위기감도 커졌다. 북한은 24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레드라인을 넘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장기화되며 글로벌 공급망에 비상이 걸렸다. 국내 코로나 확진자 수는 세계 최고 수준을 이어가는 와중에 고공 행진하는 물가와 금리, 유가는 민생을 옥죄고 있다.

(서울=뉴스1) =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고 있다.(청와대 제공)2022.3.24/뉴스1

물러나는 권력이 급했다. 주말을 앞둔 25일 오후부터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유영민 비서실장도 움직였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회동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의사가 전달됐다. 당선인께서 의제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어보라고 이야기하셨다"고 밝혔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의제 구분 없이 만나기 위해 오찬이 아닌 만찬으로 잡았다는 설명이다.

신·구권력 갈등이 길어지는 건 양측 모두에게 부담이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이 필요한 상황이라 해도 떠나는 문 대통령이 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보이는 양상은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당연시 여기는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 윤 당선인으로서도 점령군으로 비치는 모습은 결코 유리하지 않다. 게다가 압도적 여소야대 정국에서 힘으로 맞설 수만도 없다.

윤 당선인측 관계자는 "순조로운 정권 이양에 물꼬를 튼 것"이라며 "대립이 오래가봐야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17일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아래) 모습. 2022.3.17/뉴스1



"리더 간 만남서 풀리길" vs "지켜봐야"


우여곡절 끝에 전격적인 만찬 회동이 잡힌 만큼 의제는 폭넓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방역 대책과 코로나 손실보상을 위한 추경(추가경정예산)안 편성, 한반도 안보 문제 등 시급한 현안부터 먼저 협의할 전망이다. 갈등의 주요 원인이 됐던 청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편성과 인사 문제에서도 원칙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 이후에 청와대 이전 논의가 블랙홀처럼 다른 이슈를 다 집어삼켰다. 이번 회동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안보와 경제 어젠다일 것"이라며 "사람 대 사람의 허심탄회한 만남이 강조된다고 하니 실무선에서 안 풀렸던 얘기가 리더들의 만남에서 좀 더 원활히 풀리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회의적 시각도 적잖다. 단순히 만남 자체는 의미가 없고 실제 내용이 중요한데 여전히 양측의 간극이 크다는 관측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화적 정권 이양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문 대통령 쪽에서는 만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할 수 있지만 앞으로 국정을 책임질 윤 당선인으로서는 실질적으로 (협조를)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만나기로는 했지만 얼마나 긍정적 효과를 낼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