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의원식당에서 밥 한끼 한다면…[광화문]

김익태 l 2022.05.13 10:42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인 2013년 3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새 정부 출범에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도발위협으로 안보위기도 점증했다. 야당의 협력 없이는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웠다. 그런데 '레이저 눈빛'에 잦은 인사참사로 '불통'의 이미지가 굳어지고 있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당시 미국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정 절벽' 협상을 두고 공화당과 극한 대립을 했다. 새 예산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연방정부가 폐쇄되고, 경제가 수렁에 빠질 수 있었다. 오바마는 2012년 재선에 성공한 뒤 부자 증세, 총기 규제, 이민법 등 굵직한 이슈들을 밀어붙였다. 야당의 협조가 필수였지만, 공화당을 직접 상대하지 않았다. '국민과의 대화' 방식을 통한 여론전을 펼쳤다. 야당과의 틈이 갈 수록 벌어졌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오바마가 꺼낸 카드는 '밥 한 끼'였다. 공화당 상원의원 12명과 백악관 인근 호텔에서 저녁을 함께했다. 개인 호주머니를 털어 식사비도 계산했다. 때론 오찬을 함께 했고, 의회를 찾아 의원들과 개별 접촉했다. 전화를 통한 설득에도 나섰다. 개혁법안 관철을 위해 의원들을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설득하거나 지역구를 방문하는 의원 일정에 맞춰 대통령 전용기로 함께 출장도 갔다.

묘수 찾기에 골몰하던 청와대 참모들은 이런 오바마 사례를 수집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정현 정무수석의 보고가 받아들여졌다. 박 전 대통령은 4월 중순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마침 생일을 맞은 문희상 위원장을 위해 케이크도 마련했다. 민주당 소속 상임위원회 간사단 17명과도 만찬을 하며 협조를 요청했다. 오바마처럼 청와대를 벗어난 식사 건의도 있었지만, 경호 문제로 이뤄지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의원들의 여러 제안과 민원을 꼼꼼히 메모했고, 피드백해줄 것을 참모들에 지시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식사 정치'가 임기 내내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 때 뿐이었고, 결국 몰락의 길로 갔다.

대통령의 밥 한 끼가 떠오른 것은 '용산 시대'에 맞춰 공개된 대통령실 5층 배치도를 보면서다.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으로 경호처장실 국가안보실장실 비서실장실이, 건너편에 사회수석실 경제수석실 홍보수석실 시민사회수석실 정무수석실이 위치한다. 대통령과 주요 참모들이 한 공간에서 함께 근무하며 격 없이 국정 현안을 논의하겠다는 취지다.

눈에 띈 것은 정무수석실이다. '한 층에 있는데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할 수 있지만, 집무실에서 가장 먼 곳에 자리 잡았다. 그렇잖아도 '0선' 대통령으로 여의도 정치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는데 세심함이 떨어졌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 마주한 정치적 현실이 녹록지 않다. '거야'(巨野) 의회 권력의 협조 없이는 당장 내각도 꾸릴 수 없을 뿐 더러 국정과제를 제대로 완수할 수 없다. 민주당의 발목 잡기도 문제지만, 극한의 여소야대 국면을 헤쳐나갈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

정무수석실 배치가 설마 정치를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아닐 게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과 우려 불식을 위해, 나아가 소통 강화라는 집무실 용산 이전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라도 여의도를 자주 찾았으면 한다. 소통하겠다며 광화문 청사 공약을 했다 청와대로 들어가 임기 내내 '편 가르기' 정치를 일관한 전임자를 반면 교사 삼아야 하다. 기존 청와대보다 물리적 거리도 훨씬 가까워지지 않았나. 특히 민주당 상임위원장, 상임위 간사, 원내대표를 수시로 찾아 협조를 요청하는 오바마식 '식사 정치'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회의사당 사랑채도 좋고, 본관 의원식당도 괜찮다.

지난 10일 국회 앞 마당에서 열린 윤 대통령 취임식. 그 시간 파란 하늘과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떴다. '진영의 길조' '대통령의 길조' 아전인수 해석을 내놓지만, '희망의 서광' 일곱 빛깔 조화로운 무지개다. 협치와 통합의 길을 가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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