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하늘을 버린 대통령, 윤석열의 열흘

[the300][우리가 보는 세상]

박종진 l 2022.05.20 20:06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시'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점심시간보다 다소 늦게 시작한다. 한창 공사 중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점심 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려면 길을 통제하는 대통령 경호 조치를 12시 넘어서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은 직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일부러 점심시간을 살짝 비켜서 나가기 때문이다.

역대 최초 출퇴근 대통령인 윤 대통령은 평소 산책이나 주말 휴식을 취할 때도 최소 경호 인력만 대동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하겠다고 선언해온 새 대통령의 열흘은 새로움의 연속이다.

국회의원 경력이 전혀 없는 0선의 대통령, 정치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초유에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낯설고 거칠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옆에서 보니까 어떠냐" "매력이 있더냐" 대통령실 출입기자가 된 이후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대통령 윤석열'을 궁금해한다. 정답은 없다. 확실한 건 '행동'으로 보여주는 지도자라는 점이다.

당선인 시절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 기자들이 머물 공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직접 건물 구석구석을 다니며 살핀 장본인이다. 공교롭게 당시 1층에 불이 안 켜졌는데 핸드폰 불빛으로 살펴보면서 공간을 확인하고 공사를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취임 이후도 행동이 메시지다. 6일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 나섰다. 추경(추가경정예산)안 제출을 위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을 찾은 건 이례적이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요구하는 예산안을 내면서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 나와 연설하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연설이 끝나고 본회의장에서 야당 의원 한명 한명을 찾아 악수했다. 이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백블(백브리핑, 자유로운 형식의 질의응답)을 한다. 사상 최초다. 비록 짧은 대화라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고 이야기한다. 역대 이런 경우는 없었다. 청와대 관저에서 출퇴근하는 대통령의 경우 동선 노출이 안 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언론과 국민은 알 길이 없었다.

일상에서 보기가 어려우니 수시로 억측과 의심이 나왔다. 조국,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현직 검찰총장이 혈투를 벌이는 놀라운 일이 터져도 대통령은 안 보였다. 소위 '세월호 7시간'은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적어도 윤 대통령은 매일 자신을 노출한다. 싫든 좋든 언론 앞에 선다. 구중궁궐에 머물렀던 역대 대통령의 특권은 내려놨다.

#윤 대통령의 파격에 하이라이트는 광주다. 대통령실 참모진과 장관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국회의원 전원을 이끌고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찾았다. 더 이상 그 누구도 5.18 광주를 모욕할 수 없도록 쐐기를 박았다.

기념사 마지막을 장식한 "자유와 정의, 그리고 진실을 사랑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광주 시민"이라는 말은 대통령이 고심 끝에 직접 넣었다.

신율 교수는 윤 대통령의 이같은 소통 강화, 적극 행보를 두고 "하늘에 머물던 대통령이 땅으로 내려왔다"고 표현했다.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권리를 누리던 역대 지도자들과 달리 '하늘'을 버린 셈이다.

물론 이제 취임 열흘이다. 갈길이 멀다. '윤석열의 진정성'이 국민 속으로 파고들지도 미지수다.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확실한건 하나다. 한국 정치학계 석학인 박명림 교수의 말처럼 "윤석열의 성공이 대한민국의 성공"이다. 한국 현대사 최초의 성공한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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