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살아남은 남자, 혼자만 죽은 여자

[the300][종진's 종소리]

박종진 l 2022.06.02 16:29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수원=뉴스1) 경기사진공동취재단 =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가 2일 오전 경기 수원시 장안구 국민의힘 경기도당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2.6.2/뉴스1


#"인당수 뛰어든 심청이에요" 4월8일 당시 김은혜 의원은 특유의 털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 인수위에서 당선인 대변인, '윤석열의 입'으로 맹활약하다 전격 경기지사 출마를 밝힌 직후였다.

김은혜 후보는 당선된다는 확신보다는 죽을 각오로 뛴다고 했다. 국민의힘에 험지인 경기를 위해 뛰라는 당의 요구에 순응했다. 경쟁 후보 누구보다 경기도는 가장 잘 안다는 자신감이 뒷받침됐다. 심청이 비유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를 던져 희생하되 왕자님의 키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전면에 나서 행동했다.

국회의원직도 내려놨다. 다름 아닌 성남 분당갑이다. 제20대 총선에서 김병관(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승리를 제외하면 지금의 여당이 항상 이겼던 곳이다.

김은혜 후보는 밤샘 진땀 승부 끝에 2일 아침에 졌다. 개표율 97%에서 역전을 허용하는 진풍경이었다. 0.15%포인트 차이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이 경기에서 부족했던 5%포인트가량을 거의 만회했다.

#"솔직히 누가 이해할까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난 민주당 쪽 사람들은 이재명 상임고문의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 출마에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본인은 당을 위해 결단했다지만 민심은 싸늘했다. 심지어 무명의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에게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도 연거푸 나왔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우리 후보들이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저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왜 당 지지율이 급락했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선거 막판에 '총괄'선대위원장인 이재명 후보는 인천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결과는 이겼다. 55.24% 대 44.75%, 비교적 여유 있게 당선됐다.

(인천=뉴스1) 정진욱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2일 인천시 계양구에 마련된 선거사무소에서 소감을 밝히기 앞서 마스크를 고쳐쓰고 있다.(인천사진공동취재단) 2022.6.2/뉴스1


#김은혜 후보는 졌지만 국민의힘은 이겼다. 국민의힘은 시장, 군수 등 경기도 지방자치단체장 31곳 중 22곳에서 선택받았다. 도의회도 절반을 차지했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전멸하다시피 했던 경기도였다.

이재명 후보는 살았지만 민주당은 참패했다. 호남과 제주, 경기지사를 제외하고는 광역단체장은 물론 기초단체장, 시도의회 등 전국의 지방 권력을 모두 뺏겼다.

정치 9단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전날 밤 페이스북에 올린 '자생당사'(自生黨死,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그 자체로 이번 선거를 압축한다. 사실 호남 승리도 승리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이낙연 전 대표의 표현대로 "광주 투표율 37.7%(전국 최저)는 현재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탄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결과가 확정되고 국민의힘에서 제일 먼저, 제일 많이 나온 단어가 '겸손'이다. 이준석 대표는 "감사하고 두려운 성적"이라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더 겸손하게 더 낮은 자세"를 역설했다.

압승을 거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서 지도부 총사퇴 발표가 나오기 전에 오히려 먼저 '혁신위원회' 출범을 공표했다. "더 노력하고 개혁해야 할 부분"들을 말하면서다. 취임 직후부터 민생에만 방점을 찍고 있는 윤 대통령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경제"라는 메시지를 냈다.

돌아서면 선거다. 2년도 안 남은 총선이 엎치락뒤치락 승부의 화룡점정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정치판이지만 확실한 건 있다. 여당은 오만하면 죽고 야당은 변하지 못하면 끝이다. 변화와 쇄신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심청전의 무대 중 하나로 추정되는 백령도 앞바다 인당수 건너편이 황해도 장연군 장산곶이다. 민중의 저항 정신을 상징해온 장산곶매 구전설화에서 장산곶매는 사냥을 떠나기 전 둥지를 부순다. 여든 야든 희생과 헌신으로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국민이 다 알고 역사가 보여준 진리지만 정치인은 좀처럼 실천하지 못한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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