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권과 사뭇 다른 공직사회[광화문]

김익태 l 2022.06.30 05:04
"요즘 많이 바쁘시겠어요. 정권 초 이런저런 오더도 많이 들어올테고" 최근 오랜만에 만난 중앙부처 공무원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답.
"오더요? 집권 초 이렇게 조용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요" 공직 사회 분위기가 과거 정권과는 사뭇 다르다. '지시 없는 정부'. 바싹 긴장하는 맛이 없다. 떨어지는 지침이 없으니 치열하게 고민할 게 없다. 쉽게 말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야 할 시기인데 마음이 편하다는 얘기다.

그간 윤석열 대통령은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줬고,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거의 매일 출근길 기자들 질문에 답을 해왔다. 5·18 광주 행보 역시 신선하게 다가 왔다. 국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 역대 대통령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평가 받을 만 하다. 출범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정권에 점수 메기기를 하는 건 온당치 않다. 적어도 6개월 아니 1년 정도는 돼야 국정운영 능력을 평가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공직 사회 분위기를 보면 집권 초 황금 같은 시간에 뭔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통상 새 정권이 출범하면 핵심 국정과제가 선정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달 3일 '국민께 드리는 20개 약속과 110대 국정과제'를 선정해 발표했다. 정권 출범 후 110개를 다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지만, 이를 압축한 진짜 핵심이 뭔지 보이지 않는다. 가장 우선 순위를 둔 과제는 뭔가. 경제 위기 대응인가. 2대 과제, 3대 과제는…. 공무원들 사이에서 '대통령이 이건 꼭 하겠다고 하네'라고 인식 되는 게 없다. 국정과제에 대한 우선 순위가 중앙부처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자연스레 대통령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진다. 핵심 과제와 방향이 제시되지 않으니 공직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아니, 뭘 해야 될 지 모른다는 게 보다 적확하다.

좀 심하게 말하면 공직 사회에선 아직도 정권이 교체된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인사만 교체됐을 뿐이다. 기강의 문제가 아니다. 열심히만 하면 뭐하나. 국민들 눈에는 윤석열 정부가 지금 상황에서 뭘 하겠다는 건지 보이지 않고 있는데. 예고됐던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 고용노동부의 '주 52 시간제 개편' 혼선과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은 현 공직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이 보고를 받지 않았는데 장관이 발표하고 인사가 외부에 공개된다. 말이 안 된다.

국정의 핵심 우선 순위가 보이지 않고, 그게 안 보이니 시스템화가 돼 있지 않고 어수선할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김건희 여사의 패션, 조용한 내조 약속을 어겼네 마네, 국정과 무관한 가십성 기사들이 차지한다. 당장 최근 정치 현안만 살펴봐도 당권을 둘러싼 집권 여당의 내홍 키워드를 빼면 뭐가 보이나. '사정 밖에 할 게 없다'는 비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인식과 상황을 시급히 바꿔야 한다.

권력은 교체 됐지만 '동거 정부'다. 지난 정권 말 '알박기' 인사 문제가 불거졌지만, 공기업 뿐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 자문기구의 낙하산 인사들까지 여전히 버티고 있다. 직권남용 죄목으로 처벌했던 전례가 있으니 '이상한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떤 이유로 정부조직 개편도 미루고 정권이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가 설계한 정부 조직 체계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물론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철학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국정운영이 가능할까. 청와대야 국회가 아닌 정권의 권한이니 개편하고 이전했다 쳐도 의회를 넘어야 하는 것들은 첩첩산중이다. 정말 정부 조직 개편을 할 의지는 있는 것인지, 이 어정쩡한 동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그 해법을 대통령실이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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