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문자 1통에 여의도 발칵, 따져보니…

[the300]

박종진, 박소연 l 2022.10.06 16:14
[서울=뉴시스] 홍효식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10.06.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에게 보낸 감사원 사무총장의 문자 한 통이 국감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야당은 자신들의 전임 정권을 겨냥한 각종 감사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총공세다.

그러나 후보 시절부터 감사원의 독립성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은 감사원 업무에 "관여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일축했다.

현재 대통령실의 업무체계와 이번 논란의 전후 관계를 따져볼 때 적어도 드러난 사실만으로는 '청부감사'라는 야당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감사원 사무총장 '문자 1통'→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민주당 "감사원, 정권의 사냥개" 총공세


발단은 5일 오전 한 언론의 카메라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이다.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차관급)에게 문자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차관급인 감사원 사무총장은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국무회의에 배석한다. 휴대폰 화면에는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고 적혔다. 이 수석이 유 총장에게 보낸 내용은 없었다.

당일 한 조간 신문에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에 대한 감사원의 해명자료가 나갈 것이란 뜻으로 해석됐다.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 사무총장은 이관섭 수석에게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고 보냈다. 2022.10.5/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감사원이 서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요청한 게 여야 격돌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대통령실과 감사원의 '관계'에 의구심을 가져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10월 국정감사를 맞아 바짝 칼날을 갈고 있는 야권은 즉각 반응했다. 서해 사건은 물론 민주당 출신 위원장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권익위원회를 향한 감사, 문재인 정부에서 소위 '알박기'한 공공기관 감사, 여타 태양광 사업 감사 등이 모두 결국 대통령실의 하명에 따른 '청부감사' '정치감사'가 아니냐는 공격이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국회에서 "정권의 사냥개를 자처한 감사원이 누구의 지시로 정치감사에 나섰는지 그 실체가 분명해졌다"고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박범계 윤석열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회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유 총장을 비롯한 감사원 고위공직자들과 이 수석까지 공수처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법사위원회 위원(왼쪽 두 번째)와 위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후 발언하고 있다. 2022.10.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통령실 "기사에 사실여부 문의" 일축…尹 대통령 "관여할 만큼 시간적 여유도 없다"


들끓는 야당에 비해 대통령실의 설명은 비교적 단순하다. 논란이 시작됐던 전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이 수석 측에서) 기사에 대한 사실 여부를 단순 문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단순 문의에 대한 (유 총장의) 문자 내용을 보면 정치적으로 해석할 만한 어떠한 대목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6일 용산 청사 출근길에서 기자들과 만나 직접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으로 돼 있다. 그렇지만 업무는 대통령실에서 관여할 수 없도록 헌법과 법률에 돼 있다"며 "무슨 문자가 나왔다는 것 역시 그것(감사원)도 하나의 정부 구성이기 때문에 언론 기사에 나온 이런 업무와 관련해 어떤 문의가 있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사원 업무에 대해서는 관여하는 것이 법에도 안 맞고 그리고 그런 무리를 할 필요가 저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어차피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이라는 거는 철저한 감사를 위해서 보장된 장치이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그 정도 관여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도 저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밝힌 대로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이지만 직무상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우리 헌법 제97조에는 '국가의 세입·세출의 결산,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감사원을 둔다'고 돼 있다. 아울러 감사원법 제2조에는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명시됐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관섭 국정기획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2.09.26.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기관 관련 보도 확인, 국정기획수석 '고유 업무'


관건은 유 총장이 이 수석에게 보낸 문자 혹은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 자체가 독립성 침해와 연관이 있느냐다.

이를 따지기 위해 이 수석의 역할부터 살펴야 한다. 국정기획수석은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대통령실을 개편하면서 신설된 자리다. 대통령실과 정부를 아우르는 전반적 정책 조정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 수석 아래에는 국정기획비서관, 국정과제비서관, 국정홍보비서관, 국정메시지비서관이 배치됐다. 말 그대로 각 부처가 국정과제를 추진하고 알리는 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특히 국정홍보비서관은 정부 기관의 언론 대응 기능 등을 담당한다. 감사원의 핵심 업무가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 이를 확인하는 건 국정기획수석의 고유 업무에 해당한다는 의미다.

문자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점도 주목된다. 유 총장은 보도자료가 나갈 것이란 개괄적 사실만 언급했을 뿐 세세하게 사전에 알리지는 않았다. 또 만약 이 수석이 모종의 '지시'나 '관여'에 해당하는 내용을 전달한 문자가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 수석이 보낸 문자는 없었다.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국무회의 참석하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종-서울 영상으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며 대화하고 있다. 2022.10.05.



"민정수석도 없는데…압수수색 예고해주나"


감사원 측은 대통령실의 어느 수석실과도 직접적 업무 연관성이 없고, 논란이 된 서해 사건 감사 같은 경우 6개월마다 한 번씩 열리는 감사위원회 의결 절차를 거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발단이 된 언론 보도는 주요 감사계획을 사전에 감사위원회에서 의결받아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감사원 업무에 정통한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실과 접촉 창구가 민정수석이었는데 윤석열정부에서는 민정수석이 폐지된 상태"라며 "국정기획수석과 감사 업무 내용을 놓고 얘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미 진행된 국책사업에 대한 감사 같은 건 사전에 의결할 수 있겠지만 특정 현안에 대한 고위공직자의 판단 등 직무감찰은 개별 감사를 진행하다 보면 필요가 생겨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미리 감사위원회 의결을 받을 수가 없다"며 "사전에 의결하면 알려지게 되고 이는 마치 압수수색을 예고하고 집행하는 꼴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개인에 대한 직무감찰은 다 그런 식(사전 의결 없이)으로 해왔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감사원 사무총장이 (업무 관할이 아닌)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면 몰라도 국정기획수석에게 보도자료 배포 계획을 알린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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