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청문회 대상은 국회다

김익태 l 2022.10.26 04:03
판이 바뀌었다. 대선을 거치며 이런저런 '사법 리스크'에 노출됐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검찰이 이 잡듯 뒤지고 있지만, '한방'이 없다" 당내에서 흘러나온 얘기에는 난관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런데 '분신'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됐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이다. 돈이 건너간 정황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김 부원장의 부인에도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법원이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했다는 얘기다. 치열한 법적 다툼이 불가피하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힘을 빼놨다 싶었는데 검찰에 일격을 당했다. 또 다른 측근 정진상 대표 정무조정실장도 출국금지 됐고, 소환을 앞두고 있다. 검찰의 칼날이 이 대표의 턱 밑까지 다다랐다.

'무리한 수사'도 아닌 "조작 수사" 이 대표의 한마디에 민주당은 단일 대오를 형성했다. 이 대표 개인 문제로 당이 헤어나오기 어려운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목소리는 '갈치'로 공격받는다. '서해 피살 공무원 월북 조작' 의혹 사건 등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야당 말살, 여기서 무너지면 다 죽는다"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내부 결속은 갈수록 강화된다.

'대선 2라운드'. 민생이란 말치레조차 실종된 최악의 국정감사가 펼쳐졌다. 극한 대결 속 정국은 급랭 수준을 넘어섰다. 혼돈 그 자체다. 결과는 헌정사상 최초 대통령의 시정연설 '보이콧'. 국감 기간 중 당사 내 민주연구원 압수수색에 나선 검찰의 행보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당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가 부당하게 여겨져도, 비속어 발언 사과와 대장동 특검이 수용되지 않았다 해도 시정연설 거부가 정당화될 순 없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이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내년도 정부의 살림을 어떻게 꾸려나가겠다고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예산안에 대한 철학과 원칙을 보고하는 자리다. 국회법에도 '정부의 시정연설을 듣는다'고 돼 있다. 국회의원들의 책무라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이런 취지에서 전임자들과 달리 매년 총리를 보내지 않고 직접 국회에 출석하는 전통을 만들어 갔던 것 아닌가.

여야 극한 대치 속에서도 시정연설 보이콧은 없었다. 2017년 11월 '적폐 수사'에 대한 반발이 심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문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거부하지 않았다. 검은색 옷에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자리했고, 대형 현수막 3장을 펼쳐 들었다. 윤 대통령 연설 당시 정의당조차 항의의 표시로 "부자 감세 철회! 민생예산 확충!" "이XX 사과하라!" 피켓을 부착한 채 자리했다. 시정연설 거부가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민주당은 5년 전과 상황이 다르다고 강변하지만, 이 대표 방탄을 위한 다수당의 횡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헌정 사상 부끄러운 기록의 책임을 오롯이 민주당에만 돌릴 일도 아니다. 이 대표의 위기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데만 집중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도 문제다. 법안 하나 민주당이 반대하면 처리가 불가능한데 협조를 구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사이익을 누리려할 뿐 전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 등 복합적인 경제 위기에 민생이 신음하고 있고, 북한의 도발과 핵 위협은 강도를 더하고 있다. 그런데 치킨게임을 하며 한가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협치에는 관심 없고 파국으로만 치닫는다. 검찰 수사와 정치는 별개다. '정치'는 쉼이 없어야 한다. 그만큼 눈 앞에 놓인 경제 안보 위기가 엄중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청문회를 해야 한다' '불출석으로 고발하겠다' 기업인들에 대한 '호통 국감'이 재현됐다. 국민들은 최근 상영되고 있는 여의도의 부조리극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작 청문 대상이 되어야 할 곳은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고 있는 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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