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누가 재난을 정치화 하는가

김익태 l 2022.11.17 03:40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 유족들.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국민 누구인들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민들레' '더 탐사' 일부 친야 성향 온라인 매체들의 유족 동의 없는 일방적 희생자 명단 공개. 성직자인 정의구현전국사제단까지 명단 공개에 합류했다. 참담하다. 내세운 명분은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는 것이야 말로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 공학'이다" 공개되지 않으면 참사의 파장이 축소되는 걸까.

이들은 알고 있었다. 명단 공개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에 '깊은 양해'를 구한다? 원치 않는다고 연락을 주면 이름을 지워주겠다? "'이름을 알아야 추모를 한다'고 하는데 누가 우리 애 이름을 불러 달라고 했느냐. 아직 조카 친구 몇 명과 회사 말고는 알리지도 않았는데, 제3자가 마음대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 유족들의 이런 반발을 예상 못했을까.

외국인 희생자들의 명단까지 공개했다. 특정국 주한 대사관은 항의까지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참사 외국인 사망자 26명 중 25명의 유족이 이름 공개를 원치 않았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이전에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의 알 권리? 심각한 보도윤리 결핍이다. 이참에 정권을 흔들어보겠다는 일념. 이 정도면 부적절함을 넘어 2차 가해, 폭력 그 차제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소환한다. 이게 비교 가능한 걸까. 세월호 참사 희생자는 대부분 같은 학교 학생들이었고 자연스럽게 유가족협의체가 꾸려져 공개에 동의했다. 취재진들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곤 희생자들의 이름과 신원이 퍼지지 않게 주의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연관 없는 희생자가 대다수다. 유족 동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5.18 민주화 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를 법으로 막고 있는 것은 사적 정보를 함부로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물며 참사 희생자들이다.

파문에 불을 지핀 건 더불어민주당이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희생자 명단과 사진을 확보해야 한다. 당 차원의 발표와 함께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당 전략기획위원장인 문진석 의원이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메시지가 공개돼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명단 공개 논의 차제가 없었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온전한 추모'를 위해 희생자 공개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름과 얼굴을 모르면 추모가 되지 않나. 유족이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했지만 논의조차 없다던 당의 공식 입장을 하루 만에 뒤집었다.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 한 공개 가능하다?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아닌가. 공개 여부는 전적으로 유족들이 결정할 일이다. 유가족협의체가 꾸려져 추모 공간의 필요성을 밝히면 최대한 도와드리면 될 일이다. 정당과 언론이 나설 일이 아니다.

이 대표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촛불을 들고 다시 해야 되겠냐"며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발언까지 했다. 도대체 침몰하는 진실이 무엇일까. 정권 차원에서 반드시 숨겨야 할 치명적 비밀이 있어 명단 발표를 막고 있다고 여기는 걸까. 결국 정부가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인데, 정부가 무슨 권한으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나. 법 위반을 넘어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공개 여부를 물어봐야 하나. 이런 무리수를 두니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해 이번 참사를 세월호로 확대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는 것 아닌가. 명당 공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지자 민주당은 침묵하고 있다.

비극적 참사는 이렇게 정쟁의 도구가 돼 버렸고, 재발 방지책 마련 등 문제의 본질이 호도될 우려가 커졌다.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면 아무리 선의로 위장해도 결국 민낯이 드러나게 돼 있는 법이다. 누가 재난을 정치화하고 있나. 누구를 위한 명단 공개인가. 타인의 죽음과 고통을 마주하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보도 윤리와 태도를 곱씹어봐야 한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