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부터 尹-기시다 회담까지…냉온탕 오간 한일관계

[the300]

안재용 l 2023.03.17 16:46
(로이터=뉴스1) 송원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2023.3.17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12년 만에 셔틀외교 재개에 합의했다. 한국 대법원이 지난 2018년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고 일본 정부가 2019년 이에 대응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나서며 급랭됐던 한일관계가 정상화의 첫발을 뗀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58년 동안 이어온 굴곡진 한일관계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획기적으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총리와 약 1시간30분 동안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전날 오후 4시40분 관저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자위대 의장대 사열 등 환영행사를 거쳐 4시50분부터 5시14분까지 소인수회담, 5시15분부터 6시15분까지 확대회담을 열었다.



이승만의 평화선, "독도는 우리땅" 선언



한국이 1945년 독립한 이후부터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때까지 20년간 한일 양국간 외교관계는 정상화되지 않았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한국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주요 사건으로는 평화선 설정이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52년 이른바 평화선을 설정하고 한반도 주변수역 50~100해리를 해양 경계선으로 획정했다. 한일 양국간 어업분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해양 영토를 분명히하고자 하는 의도로 발표된 조치였다. 평화선에 따라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선언됐다. 일본은 반발했으나 현재까지 한국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국교 정상화…냉전의 압력


= 1963년 12월 청와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김종필. (운정재단)2018.6.23/뉴스1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이 개선되지는 않았으나 대내외에서 가해지는 정치·경제적 압력은 한국이 일본과 국교 정상화를 이룰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미국은 이승만 정부 때부터 일본과 외교관계를 재개하라는 압력을 가했다. 냉전이 본격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을 묶어 소련(현재 러시아)과 중국, 북한 등 공산권을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정부는 1951년부터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가졌다.

양국간 회담은 10여년간 큰 소득이 없었으나 한국에서 제3공화국이 출범하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나서기 위한 자금, 산업화를 위한 기술 등이 필요했다. 당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시장확보, 정치적으로는 외교 정상화를 통한 국제무대 복귀를 원했다.

1961년 10월부터 재개된 양국간 회담은 급속도로 진전됐다. 야당과 학생들이 거세게 반대했으나 박정희 정부는 협상을 계속해 1965년 6월 한일협정을 체결했다.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은 한국에 무상공여 3억달러(약 3900억원), 유상 정부차관 2억달러, 상업차관 3억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이 제공한 무상공여 3억달러는 청구권협정의 결과인데 한국에서는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일본에서는 '독립축하금'으로 선전됐다. 한일협정 결과로 일본으로부터 받은 8억달러가 한국 경제개발의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과거사·청구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봉합되면서 현재까지 갈등의 근원이 돼 왔다.




동구권 붕괴·중국의 성장·민족의식의 확대…흔들린 한일관계


=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제70주년 광복절을 맞아 1940~90년대 광복절 및 정부수립 경축행사 관련 기록물을 오는 14일부터 누리집(홈페이지·www.archives.go.kr)을 통해 서비스한다고 13일 밝혔다. 사진은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구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2015.8.13/뉴스1

1970~1980년대 한일관계는 △7광구 문제 △김대중 납치 사건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 문제 등이 불거질 때마다 요동쳤으나 큰 틀에서 경제협력이라는 틀이 깨지지는 않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1990년대에도 조선총독부 해체, 어업협정 개정 등으로 양국간 관계가 일시적으로 험악해졌으나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이 처음으로 문서화된 사과를 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 실시되는 등 큰 틀에서는 협력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잠재적으로는 1980년대말~1990년대 초중반부터 한일관계가 구조적으로 변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구권 붕괴·소련 해체 등에 따라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한일 양국간 안보·경제 협력 구조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냉전 종식으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일본과의 협력 필요성이 줄었고, 경제적으로도 일본보다는 중국과 협력이 강화됐다.

일본 경제가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며 상대적으로 약화된 반면 같은 기간 한국 경제가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한 것도 양국관계에 영향을 줬다. 양국간 격차가 줄어들며 한국 국민들의 자신감과 민족의식이 성장했고, 이에 부응한 정부도 과거사 문제에 있어 양보·방관보다는 강경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외교부 항의 성명 발표와 주한일본대사 초치 등으로 대응한 것은 이같은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때도 초창기에는 2009년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는 등 협력관계를 이어갔으나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하고 아키히토 일왕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양국관계가 급랭됐다.




위한부 합의·징용공 판결·일본의 수출규제…극한갈등 치달은 한일



(서울=뉴스1) 이동원 기자 = 청와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실이 22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NHK를 통해 속보로 전해지고 있다.(NHK 화면 캡쳐)2019.8.22/뉴스1`

2010년대 중후반부터 한일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박근혜정부는 2015년 12월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총리대신 자격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고 밝혔고, 한국 정부가 설립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일본 측에서 10억엔(약 98억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은 기시다 총리가 당시 일본 외무상을 맡고 있기도 했다.

해결되는 듯 보였던 위안부 문제는 일부 피해자들의 반발과 국민들의 반대 등으로 문재인정부 시절 번복됐고, 이는 오히려 한일 양국간 갈등을 키우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위안부 협상 타결 3년 뒤인 2018년에는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확정 판결을 내리며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2019년 7월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실시했다. 일본은 한국의 무역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한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반일감정이 크게 확대되며 일본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나타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이같은 조치에 대해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GSOMIA)를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다.




尹대통령-기시다 총리 정상회담…한일관계 반전될까



이후 한일 관계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정상회담을 가질 때까지 경색된 채 지속됐다. 양국 정부간 물밑 협상은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부터 이어졌으나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될 지 주목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중갈등이 경제·기술·무역분야에서 안보 부문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인 만큼 냉전종식과 같은 구조적 변화가 한일관계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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