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대 필수앱 '김주사'

[the300-김영란법 보고서2-⑥]김영란법 시행 후 가상으로 본 2016년 9월

세종=박재범 기자 l 2015.01.14 06:05
2016년 9월말. 경제부처 최 모 과장이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다. 저녁 약속 장소와 시간, 참석자 이름이 적혀 있다. 시장 관계자 몇 사람과 저녁을 함께 하기로 한 날이다. 참석자 모두 잘 아는 사람들이다. 알고 지낸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곧 앱(애플리케이션) 하나를 실행한다. 최근 출시된 ‘김주사’다. 사람 이름과 직책을 입력하면 곧바로 직무연관성 유무가 표시된다. 1회 식사 접대 한도도 나온다. 식당 이름을 입력하니 접대 한도에 맞는 장소인지 확인된다. 이 식당은 5만원 이상짜리 세트 메뉴만 파는 곳이어서 적합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뜬다. 장소 변경이 불가피하다.

‘김주사’ 앱은 당초 약속 장소 주변의 다른 식당을 찾아준다. 가격, 메뉴 등이 그나마 적당한 곳이다. 과거 교통 정보를 알려주던 내비게이션 ‘김기사’가 필요했다면 요즘은 점심, 저녁을 ‘김주사’에 의존한다. 이른바 '김영란법' 이후 달라진 풍속도다.

집사람 스마트폰에도 같은 앱이 깔려 있다. 친구들과 밥 먹을 때 쓴단다. 김영란법 대상이 최소 1500만명이니 ‘히트’는 예견됐던 바다. “돌다리도 두드려 본다”는 구식 카피가 공직자의 보신주의 감정을 제대로 건드렸다.

이 앱엔 가계부 기능도 있다. 누구와 얼마짜리 밥을 먹었는지가 누적으로 적립된다. 인간미가 떨어질 수 있지만 관리는 필요하다. 공인인증서 확인을 거치면 향응 총액 등도 파악할 수 알 수 있다.

물론 적극적인 사람들에 해당한다.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대외 접촉을 아예 끊었다.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다. 공무원 OB들은 후배들에게 밥 한끼 사 줄 수 없다. 당장 돈은 아끼지만 안타까운 마음만 든다.

몸을 움추린 공직자라도 ‘김주사’앱과 연동된 결제 기능은 선호한다. 줄이 길게 늘어선 식당 계산대 앞 풍경에서 힌트를 얻은 부가서비스다. 대부분의 식당이 카드 결제기를 4대 이상 설치해 놨지만 역부족이다. 각자 1만원씩 계산하다보니 밀릴 수밖에 없다. 식당 주인은 번거로운데다 수수료만 더 나가는 것 같다며 볼멘소리다.

앱의 ‘가족 관리’를 터치하면 장인, 장모, 처형, 처제 등 처갓집 식구 전화번호는 물론 직무연관성, 주고받은 선물과 가격 등이 정리돼 있다. 증권사에 다니는 처제의 집들이 선물로 무엇이 가능한지 검색도 가능하다. 이름만 있을 뿐 연락처가 없는 친척도 있다. 왕래가 없는 이들이다.

그러고보니 엊그제 신문 기사가 떠오른다. 제목이 ‘정치권, 가족분리제 도입 검토’였다. 친인척이더라도 일정 기간 왕래가 없어 가족 친밀도가 떨어지면 가족 분리를 해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영란법 시행 후 별다른 왕래가 없던 친인척 때문에 피해를 본 고위공직자가 생긴 때문이다.

찬반이 엇갈린다. 가족중 척을 진 이들이 김영란법을 악용, 해코지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게 찬성론자의 주장이다. 선의의 피해자는 막자는 얘기다. 반면 가족 분리를 허용하면 김영란법을 피해갈 길이 생긴다는 반론도 적잖다. 1년 전이라면 얘깃거리도 안 됐을텐데 지금은 핫이슈다.

일부에선 ‘김주사’의 성장 가능성에 의문을 단다. ‘김영란법’이 위헌소송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주된 근거다. 김영란법이 위헌 판결을 받으면 ‘김주사’의 필요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걱정거리는 입력해 놓은 정보의 위험성이다. 검찰 입장에선 접대, 향응의 좋은 증거가 된다. ‘김주사’가 직무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더라도 검찰이 직무연관성을 주장하면 방도가 없다. ‘김주사’가 유권해석의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도 주요 정보만 입력하지 않는다면 ‘김주사’만 한 게 없다는 마니아들의 충성도가 여전하다. ‘김주사’는 히트를 쳤지만 식당, 골프장 등은 죽을 맛이다. 실제 김영란법 시행 후 지표가 좋지 않다. 정부는 다음달중 접대비 한도 한시적 인상, 카드 수수료 인하 등‘소비 활성화 종합 대책’을 발표할 예정인데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런 기사를 쓰다가 꿈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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