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예산편성권, 국회의 입법권보다 우위에 있는가

[the300][정재룡의 입법이야기]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 사례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l 2017.09.25 06:06

편집자주 정재룡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을 통해 전하는 국회와 입법 스토리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3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2017ACC광주프린지인터내셔널 거리극 축제, 아르헨티나 극단 보알라(Voala)가 '보알라 정거장' 공중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17.06.03. hgryu77@newsis.com

현행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제27조의2 제1항은 “국가는 제27조제4항에 따라 위탁을 받은 아시아문화원이나 관련 법인 또는 단체에 매년 인건비, 경상적 경비, 사업비 등 문화전당의 안정적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지원한다”는 규정은 2014년 12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당초 그 조항을 신설하는 동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에서 “지원하여야 한다”로 의결하였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이 소위원회 의결 직후 그걸 잘못된 입법이라고 지적하면서 이후 모든 법안심사가 중단되고 이 문제로 여·야간에 엄청난 논란이 야기되었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예산 지원을 강제하는 것은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 개정안은 소위원회 의결 이후 전체 위원회에 상정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2015년 2월 임시회에서 여야 지도부의 협의를 통해 타결되었다. 현행 “지원한다”는 규정은 그 과정의 막후에서 필자가 제안한 것으로서, 여당의 “지원할 수 있다”와 야당의 “지원하여야 한다”를 절충한 타협안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의 주장처럼 정부의 예산편성권 때문에 국회는 입법에서 예산 지원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국회의 입법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인가? 국회의 국민대표기관성을 생각한다면 기본적으로 국회의 입법권이 정부의 예산편성권에 구속된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정부가 국회의 입법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이송된 법률안에 대하여 헌법 제53조에 따라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 된다. 국회는 그러한 재의요구에도 불구하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그 법률안을 확정할 수 있다. 

헌법 제54조는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는 경비로서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을 규정, 국회가 법으로 지출의무를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는 오히려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규정을 존중하여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예산 지원 또는 지출 관련 입법례를 보면 임의 규정이 대다수지만 강행 규정도 존재한다. 2010년 12월 제정된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30조와 2015년 1월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 제15조에도 강행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유독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제27조의2의 강행 규정만 문제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시 동 개정안에 대한 소위원회 심사에서 한 여당 의원이 예산 절감, 방만한 경영 자제 등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강행 규정을 임의 규정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개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은 국가기관 운영의 일부를 법인 등에 위탁하는 대신에 그 법인 등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재원을 지원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강행 규정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입법에서 예산 지원을 모두 강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예산 지원을 강제하는 것을 모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사안별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제27조의2를 같은 시기에 심사절차를 거쳐 제정된 '인성교육진흥법' 제15조와 비교해 볼 때 전자는 위탁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예산 지원을 강제할 만한 이유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후자는 인성교육 지원, 인성교육프로그램 개발·보급 등 인성교육 진흥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의 범위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 경우는 굳이 예산 지원을 강제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도 전자는 엄청난 논란이 야기되고 끝내 절충안으로 처리되었고, 후자는 아무런 논란 없이 통과되었다. 결국 이 양자를 비교할 때 논란의 대상이 뒤바뀐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저 반대의 논리로 '정부의 예산편성권 침해'가 이용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 입법권보다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중시하는 것은 종래 정부 주도 입법 시대의 논리다. 현재 의원 주도 입법 시대에서 그런 주장은 지양되어야 한다고 본다. 국회의 입법 기능은 국회 스스로 그 권한을 중시해야 비로소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정재룡 국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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