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시(野視視)]'父子 8선' 김세연, 의원직 던진다는데…

[the300]'불출마 폭탄'으로 엿본 한국당의 현주소

박종진 기자 l 2019.11.19 12:03

편집자주 야(野)의 시각에서 봅니다. 생산적인 비판,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고민하면서 정치권 안팎의 소식을 담겠습니다. 가능한 재미있게 좀더 의미있게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제21대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앞두고 시간을 확인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 "김세연 의원님은 경영에 관여 안 합니다. 부산 내려올 때 가끔 보고 받는 정도지요"

10년 전 부산 동일고무벨트 본사 공장을 찾았다. 창업주의 장손 김세연 의원이 옛 한나라당에서 최연소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할 때다. 대표이사로 일하다가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제18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나가 당선됐다.

당시 국내외 자동차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완성차 업체가 아닌 부품사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 전국 곳곳의 공장을 다녔다. 정치부 기자가 아닌 산업 담당 기자의 눈에 매출 2000억원대(당시 기준) 동일고무벨트는 어려움 속에 활로를 모색하는 전형적인 중견기업이었다.

만난 직원들은 우직했다. 서울 대기업 홍보실 직원들의 살가운 면은 없었지만 회사에 자부심만큼은 확고했다. 동일고무벨트는 1945년 고 김도근 전 회장이 해방 직후 창업해 국내 최초로 차량용 고무벨트를 국산화시킨 종합 고무 용품 기업이다. 

이곳저곳 눈 돌리지 않고 한길을 걸었다. 정계 진출 전 김세연 '대표'가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려놓는 등 기술경쟁력도 쌓아왔다. 결국 동일고무벨트는 유럽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물론 이란을 비롯한 중동 쪽에서도 납품 문의를 받으며 위기의 파고를 넘어갔다.

부산 대표적 향토기업답게 지역 기반도 단단하다. 한때 부산 동래까지 모두 동일고무벨트 땅이라 불릴 만큼 자산도 상당했다. 창업주의 장남 김진재 전 의원은 5선을 했고 그 아들 김세연 의원은 3선이다. 긴 세월 동안 민심을 잃지 않고 지지를 받았다.

# 자유한국당에서 가장 낙선을 걱정 안 해도 될 의원을 꼽으라면 김세연 의원이 들어간다. 나이는 48살(1972년생)이다. 그런 그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 소속 정당에 한 말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한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 "생명력을 잃은 좀비" "비호감 정도가 역대급 1위" 등 상대 당을 공격할 때조차 '센 발언'들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인답지 않은 표현", "이례적으로 거칠고 날카로운 말" 등의 평가가 나왔다.

당장 한국당 내에서는 부글부글 끓는 여론이 적잖다. 특히 당을 이끌어온 주류와 중진들 사이에서는 분노를 참기 어렵다는 반응도 상당하다. 김 의원이 3선이지만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점을 들어 경솔하다거나 가볍다는 식으로 보는 분위기도 읽힌다. 평소 당내 의원들과 교류가 별로 없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왔다.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사실 김 의원과 친하게 지내거나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의원들을 찾기 어렵다"고도 말했다. 

(서울=뉴스1) 이종덕 기자 =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박성중·김세연, 문재인 정부 전반기 미디어정책평가 및 '신문·방송·통신·OTT' 발전 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세연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9.11.1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 의원을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으로 보든 이번 불출마 선언이 장기적으로는 김 의원에게 좋은 결과를 안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음 총선에서 쉬더라도 2022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오른 뒤 더 큰 꿈을 향해 갈 수 있다는 예상이다. 차차기 대권에 도전하더라도 50대 중반에 불과하다.

물론 반감을 가지는 쪽은 그래서 고강도 비판에 저의를 의심하기도 한다.

# "감수성이 없습니다. 공감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소통능력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걸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불출마 선언문 중)

사실 어떤 거친 표현보다 이 부분이 한국당으로서는 가장 아파해야 할 부분이다. 대의제의 핵심인 정당이 소통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조롱을 당해도 이유조차 모른다는 건 집단지성이 마비됐다는 소리다.

일부 의원들의 지적대로 김 의원이 평소 당내 의원들과 교류가 실제로 부족했다면 더 문제다. 국민과 소통은 고사하고 당내 소통도 안 된다는 의미다. 김 의원이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 성품 문제를 떠나 시스템 문제다.

수도권 한 중진 의원은 "이번 불출마 선언을 보면서 명색이 여의도연구원장인데 평소 당 지도부와 이 정도로 소통이 없었나 싶어 다시 한번 놀랐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청년정당을 표방하면서 혁신을 외쳤다. '국민 속으로'라는 모토의 핵심은 소통과 공감이었다. 확장과 흡수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 한국당은 얼마나 변했나. "당 일각에서 여전히 '총선은 전쟁인데 장군이 아닌 이등병(청년)을 내보내는 꼴'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신보라 청년최고위원)고 걱정하는 게 현주소다. 쉰 살을 앞둔 김 의원을 두고도 "나이가 어려서"라는 말이 나오는 당 분위기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충격적 불출마 선언'에 평가는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한국당 편이 아니다. 어떤 쓴소리도 곱씹으며 소화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나라를 위해서다. 그 이상 고언(苦言)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9.11.18/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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