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안전' 법안 500개 '표류 중'

[the300-탐사리포트] [세월호 1년…못 다한 숙제 ①]

이상배, 배소진, 황보람, 박소연 기자 l 2015.04.16 05:51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안전 후진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꼭 1년이 지났다.


이후 해양 뿐 아니라 교통, 건축, 화재, 교육, 공연 등의 분야에 걸쳐 수많은 안전 관련 법안들과, 참사의 간접적 원인이 된 '관피아'(관료+마피아) 근절 법안들이 발의됐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발의된 안전 또는 관피아 관련 법안의 4분의 3은 여전히 처리도 폐기도 되지 않은 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세월호가 남긴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세월호 이후 안전법안 처리율, '24%' 불과

15일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세월호 참사 이후 발의된 총 657건의 안전 또는 관피아 관련 법안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날까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거나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병합(대안반영 폐기)된 법안은 156건(24%)에 불과했다. 나머지 501건(76%)은 아직 상임위 차원에서조차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분야별로 세월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해양 안전 관련 법안은 세월호 참사 이후 총 97건이 발의돼 이 가운데 42건(43%)만 본회의 통과 또는 상임위 차원의 병합 등으로 처리됐다.

화재 안전 관련 법안은 47건 가운데 16건(34%), 식약품 안전 관련 법안은 83건 중 18건(22%)이 처리됐다. 원자력 안전 관련 법안은 35개가 발의됐으나 처리된 법안은 2건(6%)에 그쳤다. 반면 학생 안전과 관련된 법안은 총 54건 가운데 36건(67%)이 처리돼 가장 높은 처리율을 보였다.

이밖에 분야별 처리율은 △관피아 근절(26%) △아동 노인 장애인 안전(16%) △건축물 안전(12%) △교통 안전(11%) △기타 안전(6%) 등으로 나타났다.

해양 안전 분야의 경우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다수의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수난구호법 개정안 가운데 △해양사고시 구조 의무자에 선장과 승무원을 추가하는 법안 △선박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선장 또는 승무원이 이를 신고하지 않아 사람을 숨지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하는 법안 등이 아직 안전행정위원회에 발이 묶여 있다.

해사안전법 개정안의 경우 △해양사고 발생시 해양경비안전서장이 선장 등에게 승객 탈출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선박의 평형수와 적재화물 등에 대해 해양경찰서장의 확인 후 출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선박사고가 발생한 경우 운항자 등에 대한 음주 측정을 의무화하는 법안 등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그러나 농해수위에서는 이 법안들에 대해 단 한차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해운법 개정안 중에도 △선박운항관리자를 대신해 해양수산부 소속 해사안전감독관이 여객선의 안전운항에 관한 지도 및 감독을 담당토록 하는 법안 △여객선에 싣을 차량과 화물에 대해 실제로 무게를 측정하고 그 기록을 보존토록 하는 법안이 농해수위에서 잠자고 있다. 일정 규모 이상 선박에 안전관리 선원의 탑승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선원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 "아직도 안전은 뒷전"

해양 안전 외 분야에서도 철도 관련 종사자들에게 기본안전수칙 준수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철도안전법 개정안이 국토교통위원회를 넘지 못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이용하는 통학버스의 운전자가 음주운전 또는 신호위반, 속도위반을 한 경우 가중처벌토록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안행위에 계류 중이다.

16층 이상 아파트나 교량, 터널, 지하차도, 철도, 항만 등 1·2종 시설물에 대해 정밀안전진단의 필요성을 통보받은 뒤 1년 내 반드시 정밀안전진단을 받도록 하는 내용의 시설물안전관리특별법 개정안 역시 안행위에 묶여 있다. 정밀안전검사에 불합격한 승강기(엘리베이터)에 대해 당국이 운행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승강기시설안전관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사고와 같은 공연장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무대예술 전문인 자격의 결격사유를 규정하는 내용의 공연법 개정안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어린이집의 원장과 보육교사들이 반드시 안전교육을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해 3월3일 본회의에 부의됐으나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논란에 휘말려 끝내 부결됐다.

이 가운데 해양 안전 관련 법안에 대해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이른 시일내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1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해상 안전에 대해 아직 처리되지 않은 법안들도 조속히 처리돼야 할 것"이라며 "해상 안전을 강화하는 법안들은 특별한 쟁점이 없는 만큼 4월 국회 중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양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안전 법안들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적 대재앙을 겪고도 여전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는 문화는 여전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위금숙 위기관리연구소 소장은 "세월호 참사 후 1년이 지났는데 정치권은 아직도 경제 이야기 뿐이고 안전은 뒷전"이라며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경제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 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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