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의 볼륨업]'시행령' 논란으로 되짚어본 '단통법' 대란

[the300] '폰가격 거품'·'쥐꼬리 보조금'…법률 아닌 정부 고시 탓

이하늘 기자 l 2015.06.08 06:30

편집자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회 16개 상임위 중 가장 이름이 길고, 담당 분야도 다양하다. 말도, 탈도 많은 것은 당연한 일.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IT·벤처·방송통신·R&D 등 다양한 담론과 뒷이야기를 라디오 DJ처럼 친근하게 독자들에게 속삭이려 한다. 때로는 볼륨을 높여 비판의 목소리도 가감없이 전달할 계획이다.


최근 '시행령 등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 요구권'을 담보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습니다. 찬성 211명, 반대와 기권은 각각 11명, 22명으로 국회에서 표결을 거쳐 통과됐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권은 물론 법학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간 상위법인 법률을 하위개념인 행정입법(시행령·시행규칙·조례 ·규칙·고시·예규 순)이 배반하는 '하극상' 논란은 심심찮게 불거졌습니다. 아울러 법률과 큰 연관이 없는 사안을 행정입법으로 제약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단통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초 단통법은 누가 언제 어디서 단말기를 구입해도 거의 같은 수준의 지원금을 받도록 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습니다. 이른바 '호갱' 방지를 위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4월30일 단통법이 국회에 통과된 이후 10월1일 시행되기까지 6개월 동안 하위법인 방통위 고시가 마련되면서 단통법의 취지는 점차 무색해집니다.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의 지원금을 별개로 공표토록 하는 '분리공시제' 무산이 대표적입니다.

단통법 시행을 일주일 앞둔 지난해 9월24일 규제개혁위원회는 분리공시 제도 삭제를 권고했습니다. 이날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이에 대한 논의 끝에 결국 규개위 권고를 받아들입니다.

분리공시가 도입되면 제조사들은 자시 지원금을 외부에 알려야 합니다. 기존 높은 출고가 책정 뒤 비공개 보조금 지급을 통한 '조삼모사' 마케팅이 불가능해져 결국 단말기 가격 거품 역시 사라집니다. 하지만 분리공시 배제로 인해 단말기 가격 하향조정은 소원해졌습니다.

최근 문병호 새정치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갤럭시S6 국내 가격은 주요 10개국 평균가격에 비해 3만원 이상 높습니다. 미국(버라이존) 대비15만원 이상 비쌉니다.(삼성전자는 시장 및 마케팅 상황에 기반해 통신사들이 가격을 책정한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반면 아이폰6 국내 가격은 오히려 평균가격보다 5만원 가까이 저렴합니다. 여전히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의 국내 가격 책정에 거품이 있다는 반증입니다.

월 8만원 이상 값비싼 요금제를 이용해도 30만원 선에 불과한 '쥐꼬리' 지원금이 지급되는 것 역시 행정입법의 영향입니다.

방통위 고시에 따르면 보조금 상한액은 25만-35만원 범위 안에서 정해야 합니다. 상한선인 35만원을 채운다 해도 단통법 이전 음성적인 보조금 지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긴 매한가지입니다.
단통법은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단말기 약정할인을 받지 않는 이용자에게 요금의 20%(시행 당시 12%)를 할인해줍니다. 기존에는 번호이동 등 신규단말기 구입 고객에게만 보조금이 집중됐습니다.

아울러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에게 구형 폰을 출고가 그대로 받으면서 비싼 요금제 및 유료서비스를 강제하는 일부 악덕 유통업자의 상술 역시 근절됐습니다. 한데 뭉쳐 발라내기 어려운 통신요금(약정할인)과 단말기 가격을 이용자들이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단통법의 효과입니다.

하지만 이들 행정입법으로 인해 여전히 높은 단말기 출고가와 부족한 보조금 집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통법이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하위법의 영향이 큽니다.

물론 이번 국회 개정안에 대한 법률적 검토와 논의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행정입법이 상위법인 법률의 취지를 거스르고, 결국 국민들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국회법 개정안이 아니어도 이를 바로잡을 장치는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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