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반쪽 특허법원, 해법은···

[the300](종합)

유동주 기자,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l 2015.11.04 09:23
'반쪽' 특허법원, 관할 집중화로 '빛 볼까'

사진=특허법원 홈페이지


‘특허법원 관할집중‘ 문제가 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처리될수 있을지 주목된다. 군사법원 폐지, 상고법원 설치, 사법시험 존치, 사형제 폐지 등 반대가 만만치 않은 다른 법사위 현안들과 달리 지난달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특허법원 관할집중은 일반법원과 특허법원으로 이원화 돼 있는 특허 관련 소송을 충남 대전에 있는 특허법원으로 일원화해 법률서비스 질을 높이자는 것이다.  법원 조직체계에 적잖은 변화를 주게 되고 소송 당사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논의가 간단치 않다. 국회에서는 법제사법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과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 등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특허법원 키우자"…산업계도 동의 


특허 관련 소송은 크게 3종류로 구분된다. 모두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3심 재판인데 특허 권리에 대한 인정여부를 다투는 ‘심결취소소송’은 '특허심판원-특허법원-대법원'을 거친다. 특허권을 허락없이 사용하는 경우와 관련된 '특허침해소송'은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순이다. 특허청이 낸 행정처분에 불복할 경우 서울행정법원(혹은 행정심판)-고등법원-대법원의 판단을 받는다.




대전에 있는 특허법원은 3가지 특허소송 중 '심결취소소송'의 2심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반쪽 자리' 특허법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특허침해소송까지 특허법원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특허침해소송 1심 재판은 전국 58개 지방법원(90% 이상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2심은 일반 고등법원(90% 이상 서울고등법원)에서 담당한다. 이것을 1심은 고등법원 소재 지방법원 5곳(서울, 광주,대전, 대구, 부산)에서 맡고 2심은 '특허법원'에서만 취급하게 하자는 것이 '특허법원 관할 집중'의 핵심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 특허 경쟁에서 우리 특허법원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이원화된 특허소송체계가 판결의 전문성과 일관성, 효율성 부족으로 이어져 소송 당사자들에게 불만을 가져오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계와 특허관련 업계는 특허법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특허법원 관할집중을 얘기하는데 이를 통해 특허소송제도의 선진화를 꾀할 수 있고 산업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협'반대, 이유는...


관할집중 문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특허법원이 대전에 있다는 것이다. 대전은 특허청과 특허법원, 특허정보원, 특허연수원 등이 입지해 있는 등 사실상 '특허 거점 도시'로 계획됐다.

 

특허법원의 전문성을 인정해 소송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는 관계기관이나 업계도 의견을 같이 하지만 특허법원의 위치문제와 각 계의 입장차로 세부 사항에선 의견이 갈린다.  

특허법원의 '지역 접근성 제한' 문제는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등의 주요 반대 논거다. 특허소송 참여자인 기업과 개인 대부분이 수도권에 있는 우리 현실에서 대전 특허법원에 관할집중을 할 경우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으로 총 1400여건의 특허침해사건 중 90%를 서울중앙지법이 담당했다. 대구·부산·광주의 경우 10~20여건에 불과하다. 현재 법사위에서 만들어진 상임위 대안은 1심은 고등법원 소재지 5곳 지방법원에서 담당하고 2심부터 대전 특허법원에서 다루도록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서울중앙지법의 전문성을 인정해 '전속관할'을 인정하고 나머지는 지역 고등법원 소재지에 있는 지방법원에서 1심을 담당하자는 것이다.

 

법사위 대안이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하면 2심부터는 사건이 '대전'으로 옮겨지는 효과가 있다. 이에 대해 변협은 소송당사자 등이 대전으로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특허사건의 경우 대부분 전문 변호사가 법률 대리인으로 선정된다. 전문 변호사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활동하고 있어 대전 특허법원으로 가야하는 불편을 호소하는 셈이다.   

법무부도 변협과 같은 '지역 접근성'논리로 반대했으나 지난 달 열린 법안심사소위를 기점으로 반대의사를 사실상 접었다.

 

이에 대해 "특허소송의 전자소송 활성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반론이 있다. 게다가 법사위 대안은 서울중앙지법의 중복관할과 재량이송을 허용하고 있어 관할집중이 시행되더라도 1심의 경우 여전히 서울에서 특허침해소송을 다룰 수 있다. 법원 내부적으로 특허법원의 '서울분원'을 설치해 접근성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변협이 반대하는 배경에는 소송 대리권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변협과 변리사회는 특허침해소송의 '소송대리권'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변협은 현재 특허심판원의 심결취소소송에만 변리사의 소송대리가 허용되는데, 특허법원 관할집중이 되면 특허 침해소송 '소송대리권'도 변리사에게 허용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선 특허법원을 강화하고 특허보호를 더욱 강력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특허산업보다는 외국의 이른바 ‘특허괴물’ 권리를 보호하는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얘기도 한다. 국내 특허권 보호경향이 강해지면 첨단 특허를 보유하며 소송전을 벌이곤 하는 '특허괴물'이 국내 기업을 상대로 각종 소송을 제기하거나 더 높은 로열티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우리 산업계가 보유한 특허가 세계 5위권일 정도로 특허등록이 활발한 지금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평가라는 얘기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수준의 특허능력을 보유한 만큼 그에 걸맞는 특허법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허법원 관할 집중', 16·17·18대 자동폐기…19대에선(?)


지난달 20일 특허침해소송의 관할을 집중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과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각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이어 같은 달 28일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선 소위 심사 결과를 토대로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개정안과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절충한 '위원회 대안'을 본회의에 상정키로 의결했다. 

 

법사위 대안은 지식재산권을 특허권·실용신안권·디자인권·상표권·품종보호권과 '특허권 등'을 제외한 지재권으로 구별하고, 전문성이 강조되는 '특허권 등'에 관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고등법원 소재지의 지방법원 전속관할(서울 지역은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한정)로 하는 내용이다. 

 

일반법원과 특허법원으로 이원화 돼 있는 특허 관련 소송을 충남 대전에 있는 특허법원으로 일원화하자는 관할집중 문제는 특허업계의 숙원사업이다. 19대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결론을 앞두고 있다. 

  

특허법원이 생긴 뒤로 관할집중 방안은 줄곧 추진돼 왔다. 특허법원이 새 청사를 마련한 2003년 직후인 2004년부터 한 개선방안이 논의돼 16대, 17, 18대 국회에서 각각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번번히 폐기됐다.


정부에서는 2011년 출범한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통해 특허소송 관할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지식재산위원회 산하 특별위원회는 2013년 특허침해소송에 대해 1심은 서울중앙지법과 대전지방법원 전속관할로 2심은 특허법원 집중관할로 하는 개선안을 도출했다.

 

대법원도 지난해 4월 사법정책자문위원회를 통해 침해소송 1심은 각 고등법원 소재지에 있는 5개 지방법원 전속관할로 하고 서울중앙지법의 '선택적 중복관할'을 인정, 2심은 특허법원으로 일원화 하는 내용의 '관할 집중'안을 채택한 바 있다. 

 

지식재산위원회가 내놓은 안은 기존 58개 지방법원에서 다루던 특허 침해소송 1심을 두 곳으로만 한정해 관할하는 방안이기 때문에 급격한 관할 변경이 발생한다. 법사위원장인 이상민 의원과 정갑윤 의원이 추진한 개정안은 대법원 안과 유사하다. 이밖에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특허소송을 활성화하고 특허권을 보호하는 내용의 특허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상민·정갑윤 의원 개정안은 법사위에 상정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함께 논의됐다. 지난 7월 21일 소위에선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반대와 일부 의원들의 지역 접근성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지난 달 20일 기존 반대입장을 고수했던 법무부와 일부 여당 의원들이 입장을 바꿔 소위를 통과했고 이어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본회의 상정을 의결했다. 시행일이 내년 1월 1일부터여서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내년부터 곧바로 시행될 예정이다.



"'특허산업' 고려해 '전문성' 갖춘 '특허법원'만들어야"


특허법원은 1998년 문을 연 후 2000년 대전 특허청 시대를 맞아 대전에 자리잡았다. 2003년 청사를 새로 지으면서 특허침해소송 등을 특허법원에서 모두 담당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하지만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 법원은 큰 변화없이 각 지역법원에서 특허침해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특허산업 종사자들은 현재 특허법원이 특허심판원에서 올라오는 심결취소소송 뿐 아니라 특허침해사건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전문성’이다. 특허침해소송은 특허를 침해받은 경우 해당 권리를 갖고 있는 당사자가 권리구제를 받기 위한 소송인데 전문가가 아닌 일반 판사에게 침해여부를 판단하게 하고 손해배상액 산정 등을 맡기는 것은 맞지 않다는 논리다.




◇'전문성'부족한 특허재판 담당 판사

 

특허업계에서 유명한 A변호사는 특허소송을 처음 맡게 됐을 때의 ‘아찔함’에 대해 얘기했다.


인문계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판사가 된 그의 공학 지식은 고등학생 수준이었다. 지방법원에 부임하자마자 특허소송을 맡게 된 A변호사는 노량진 입시학원과 자격증학원을 다녀야 했다. 법조계 지인을 만날까봐 모자를 눌러 쓴 채 물리·화학·생물을 다시 공부했고 이런 과정을 거친 뒤 관련 사건 재판을 맡으면서 특허분야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최근들어 공대 출신 판사가 늘어나는 등 판사의 출신 학부가 다양화되고 있지만 절대 다수는 아직 법대 출신이다. 특허업계에선 법원의 특허소송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 견해가 적지않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의 2012년 설문조사에서 특허소송을 경험한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70% 가 "우리 법원이 특허 소송에 전문성이 없다"고 답했다. 92% 는 "특허침해소송에 관할집중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특허권 '산업적'특성 고려한 '특허법원'으로 키워야


특허 등의 무효 여부를 다루는 심결취소소송은 특허법원이, 침해 여부를 다루는 특허침해소송은 일반법원으로 이원화 돼 있어 동일한 특허에 대해 침해소송과 무효소송의 결과가 다르게 나오거나 서로의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다국적 기업인 킴벌리 클라크와 쌍용제지의 특허소송은 무려 11년 8개월을 끌었다. 심결취소소송과 특허침해소송은 절반 이상이 연계돼 있는 데, 침해소송과 취소소송을 다루는 법원이 다르다 보니 특허 무효여부를 기다려야 하는 등의 지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소송지연은 '특허기술'을 보유한 중소업체가 대기업 등에 의한 특허권 침해에 대해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이 소송지연전략으로 중소기업을 고사시키는 사례는 특허법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법관 '순환근무제'가 법관들의 전문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법관들은 근무지와 담당업무를 3년 이내 단위로 변경한다. 특허전문 법관을 양성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카이스트를 졸업한 공학도 출신의 B변호사는 "우리 법원의 특허 사건 승소율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침해사건에 대한 손해배상은 평균 7000여만원에 그치고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100억원이 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특허권에 대한 산업적 인식이 강하다"며 "산업적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특허법원의 높은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허법원', 美·日·EU 등 해외도 '관할 집중화'




특허관련 산업이 성장하면서 각 국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특허법원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허산업이 발달된 미국은 지식재산권 소송의 관할권을 집중화시키고 있다. 미국은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특허소송의 항소심을 전담하고 있다. 지방법원에서는 주로 텍사스와 델라웨어 법원이 특허소송을 전담하고 있다.

 

미국도 관할집중을 시행한 1982년 전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특허무효율은 55.7% 에서 27.9% 로 내려갔고, 특허 권리자 승소률은 반대로 25% 에서 3배인 75% 로 높아졌다. 이는 특허권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적극적인 보호라는 가치를 인정하면서 나온 결과로 해석된다.

 

일본은 특허 심결취소 1심은 특허청 심판원에서 담당하고 있고 특허침해소송 1심은 도쿄와 오사카 재판소에 집중하고 2심은 모두 지적재산고등재판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허법원 관할집중 모델은 일본 방식과 유사한 셈이다.

유럽연합(EU)은 내년 단일 특허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통합 작업으로 '공동특허법원'설립을 추진중이다. EU회원국들의 특허권 행사를 통일시키는 작업이다. 다만 각국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유예기간 등을 거쳐 장기간에 걸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간 자국산업 육성을 이유로 국제적으로 특허권 보호에 대해 인색하단 평가를 받던 중국조차 지난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에 지식재산법원 설치를 의결해 운영하고 있다. 동북아 경쟁국으로 볼 수 있는 대만도 지식재산특별법원을 운영해 지식재산관련 소송의 1, 2심을 전담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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