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하는 문화재'…건물주 '돈 안된다' 방치

[the300][런치리포트-문화재 발굴지원]②조선전기 유적, 학원 자습실로…문 걸어잠그기도

지영호 기자 l 2016.10.18 05:51
서울 종로 파고다어학원 내 유물전시실. 토익자습실로 쓰이고 있다./자료=김민기 의원실


#. 2009년 서울 종로의 한 건물 공사현장에서 조선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건물지와 분청자호 등 수백개의 유물이 출토됐다. 보존유적을 건물 내부에 전시하는 것으로 결정됐지만 올해 5월까지 현장은 학원수강생의 학습공간으로 활용됐다.

#. 인근의 종로 육의전빌딩에선 조선시대 상설시장인 시전행랑 등이 출토됐다. 분청사 접시 등 430점 안팎의 유물도 발굴됐다. 건물 내 박물관까지 지어놨지만 건물주는 문을 걸어잠근 채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발굴된 문화재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상실할 채 방치되고 있다. 학원의 자습실이나 창고로 쓰이는 등 경우까지 있어 부실한 사후관리가 문제로 떠오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민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자체로부터 문화재 관리대장을 2012년 관련 규정 마련 이후 한 차례도 제출받지 않았다.

발굴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존조치된 매장문화재에 대해 연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점검결과를 받아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감독이 느슨하다보니 보존유적은 건물주나 토지주의 입맛에 따라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종로 파고다어학원의 경우 2013년 자습실로 활용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됐지만, 올해 김 의원실의 현장 방문에서도 개선되지 않았다.

또 사적 제2호인 김해 봉황동 신석기시대 패총유적은 안내판조차 없어 중요 유적인지 확인할 수 없고, 경작까지 하고 있어 훼손 우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영주의 한 대학교 내에 위치한 삼국시대 가마터, 교촌리 기와가마 유적은 토사가 유실되면서 가마가 노출돼 멸실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보존조치된 유적은 서울 41건을 비롯해 전국 571건에 이르지만 문화재청은 제대로 된 현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자 문화재청은 이들 문화재에 대한 관리실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지난달 29일 국정감사에서 이같은 지적이 나오자 "발굴문화재 현장보전은 지자체와 건물주가 관리하는 상황"이라며 "관리비 지원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근거는 있는 데 벌칙이 강화돼 있기 때문에 제도정비가 우선 필요하다"며 "내년 예산에 정부 예산이 한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문화재청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 육의전빌딩 내 육의전박물관. 문을 걸어잠궈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자료=김민기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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