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린 미얀마 하늘, 나팔수의 '아웅산 진혼곡'이 울렸다

[the300](종합)文, 미얀마에 '한강의 기적' 언급하며 "같은 배를 타자"

양곤(미얀마)=최경민 기자 l 2019.09.05 04:00
【양곤(미얀마)=뉴시스】박진희 기자 = 미얀마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4일 미얀마 양곤 아웅산 묘역에 건립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를 대통령으로는 처음 방문하여 아웅산 테러로 순국한 외교사절을 추모하고 있다.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 순방 중 북한 공작원의 폭탄 테러로 서석준 부총리 등 대통령 순방 외교사절과 기자 등 한국인 17명과 버마인 3명이 희생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2019.09.04. pak7130@newsis.com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아웅산 묘역 테러' 희생자 추모비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비가 오던 미얀마의 하늘에 진혼곡이 울려퍼졌다.

문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미얀마의 최대 도시 양곤에 위치한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에 참배했다. 북한 공작원의 '아웅산 묘역 테러'로 인해 사망한 인사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2014년에 건립된 이 추모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추모비가 건립되기 전인 2012년 5월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테러 현장을 참배했던 적은 있다.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은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버마(현 미얀마) 방문 때 발생했다. 아웅산 묘역은 미얀마의 국부 격인 아웅산 장군을 기리는 곳인데, 북한은 이곳을 찾기로 한 전 전 대통령을 노리고 테러를 강행했었다.

당시 일정이 미뤄지며 전 전 대통령은 아웅산 묘역을 향해 늦게 출발했었다. 북측은 전 전 대통령이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폭탄을 터뜨렸다. 현장에 없었던 전 전 대통령은 무사했지만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김재익 경제수석 등 17명이 순직했다.

그리고 36년 뒤. 비가 내리는 와중에 추모비를 찾은 문 대통령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의 시간을 가졌다. 문 대통령과 수행원들의 표정은 시종 굳어있었다. 추모비에 도착한 문 대통령 내외는 헌화병 2명이 받들고 있는 화환에 가볍게 양손을 대고 3보 앞으로 이동한 후 손을 뗐다. 분향과 묵념이 이어졌고, 나팔수는 진혼곡을 연주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아웅산 묘역 대한민국 순국사절 추모비'라는 글자가 적힌 벽, 희생자들의 이름이 써져 있는 벽 사이에 난 틈을 유심히 살폈다. 이 틈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아웅산 묘역 테러'가 일어났었다는 설명을 들은 직후였다.

정부 관계자는 "미얀마는 한국전 당시 약 5만 달러 상당의 쌀을 지원해 준 국가로 양국 간의 오래된 우호와 신뢰로 추모비가 건립되었다"며 "이번 대통령의 참배를 계기로 미얀마와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지속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힘을 줘온 문 대통령이 미얀마 국빈방문을 맞아 대한민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추모비에 참배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남북 간 대결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일정인 셈이다.

문 대통령은 3일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아웅산 장군의 딸)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국제사회의 단합된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남북 평화경제가 정착되면, 미얀마와 같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에도 경제적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고 보는 중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미얀마 경제협력 산업단지 기공식 및 비즈니스 포럼'에도 참석하며 전날에 이어 '경제 한류'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경협산단은 여의도의 약 80%에 해당하는 크기(225만㎡·68만평)로 조성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을 위한 미얀마 최초의 산업단지다.

문 대통령은 "미얀마의 경제수도인 양곤 인근에 섬유, 봉제, 건설, 정보통신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과 산업 인프라를 갖춘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게 됐다"며 "한국이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든 것처럼, (경협산단이) 미얀마의 젖줄 ‘에야와디강의 기적’을 만드는 디딤돌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속담인 "같은 배를 타면 같은 곳으로 간다"는 말을 인용하며 "평화와 번영을 위해 같은 배를 타자"고 밝혔다. 또 "미얀마와 한국이 함께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며 "미얀마 경제의 힘찬 도약에 한국이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고 강조했다.
【양곤(미얀마)=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미얀마 양곤 시내 롯데호텔에서 "한-미얀마, 상생과 번영의 동반자"라는 주제로 열린 '한-미얀마 경제협력 산업단지 기공식 및 비즈니스 포럼'에서 참석에 앞서 변창흠 LH공사 사장에게 경협산단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19.09.04. pak713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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