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무·이종섭 사퇴→의대 2000명도 양보?…못하는 이유

[the300][종진's 종소리]

박종진 l 2024.03.31 15:56

편집자주 필요할 때 울리는 종처럼 사회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으로 보탬이 되는 목소리를 전하겠습니다.

[서울=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을 방문해 박승일 병원장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2024.03.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전신

#정부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응원이 뜨거웠다. 2월6일 2000명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한 직후 국민 지지율은 80%(한국갤럽 2월13~15일 조사)에 육박했다. 더불어민주당조차 "의대 정원 확대는 평가할 대목"(2월7일 홍익표 원내대표)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50여일이 지난 현재 전장의 지형은 확연히 달라졌다. 여당 내에서도 정부와 결이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의사 출신인 안철수 의원이 시행을 1년 미루자고 했고 나경원 전 의원은 30일 "국민은 이미 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확인했고 정부의 유연한 태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정부가) 민심에 순응할 차례"라고 했다. 정부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얘기다. 총선에 나선 다른 여당 후보들도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첫 주말을 기점으로 비슷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이종섭 전 주호주대사 논란을 '사퇴'로 매듭지었으니 이제는 의대 증원 문제만 남았다는 식이다. 4.10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 악재를 털어내라는 듯 요구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2000명만큼은 번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정부는 예상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의대 증원 발표 직후 사석에서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단계별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각종 대응조치에 대한 법적 검토도 끝내놨다. 아직 카드를 꺼내지 않았을 뿐 공공연한 비밀처럼 자행돼왔던 이런저런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 등 의사들을 압박할 수단도 준비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짧고 쉽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면 역대 모든 정부가 패배했을 리 만무했다.

무엇보다 중점을 둔 건 응급·중증의료 비상체계 구축이었다. 다행히 그동안 치명적 혼란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이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란 점이다.

민심의 흐름에서 밀리면 버틸 재간이 없다. 정부가 정책을 물리고 그래서 전공의들이 복귀하고 의대 교수들이 사표를 거둬들이면 마치 여론의 지지가 회복되고 사태가 해결될 것이란 기대도 형성되는데 본질은 이와 별개다. 국민은 의료공백, 의료대란이 현실로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누구를 편들자는 게 아니다.

즉 사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라는 주문이다. 현재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는 쪽은 의사다. 의사단체는 '2000명 증원 철회'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의대 정원을 결정하는 건 국가의 권한이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의 일방통행만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의대 증원 문제를 담당했던 한 정부 실무자는 올 초까지 "너무 답답하다. 아무리 요청해도 의사 쪽에서 적정 정원에 묵묵부답"이라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파악해본 결과, 의료계는 정부와 진행했던 28차례의 협의에서뿐만 아니라 물밑으로도 의대 정원에 대해 숫자를 말하지 않았다.

#정부가 '2000명'을 포기하면 협상 테이블은 마련될 수 있다. 그럼 1500명이면 의사 측이 수용할 것인가. 혹은 1000명일까. 앞서 의대 학장들이 350명 증원을 말한 바 있고 새로 선출된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당선인이 "되레 500~1000명을 줄여야 한다"고 밝힌 상황에서 의사 측이 흔쾌히 받아들일 숫자는 찾기 어렵다. 결국 2000명 포기는 증원 실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 방침에 의사들이 파업하고 국민이 불안해하면 결국 정부가 물러나는 탓에 없던 일로 됐던 지난 수십 년의 패턴이 이랬다.

물론 모든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잡는 건 결코 아니다. 제자리를 지키며 환자와 함께 호흡하는 수많은 의사들 덕분에 우리가 산다. 그래서 일부 돌출하는 언사가 더 우려스럽다.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은 29일 기자회견에서 '낙선운동'을 거론하면서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국민들한테 적극 설명하려 한다"고 했다. 일부 정치인이 의사에게 나쁜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며 이를 겨냥한 발언인데 총선정국을 이용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앞에 정파적 이익이나 진영 논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국가의 미래와 직결되는 의료 정책은 과학적 근거에 따라야 하며 '황상무·이종섭 논란'처럼 국민의 눈높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무적 영역과도 또 다르다.

2000명 증원에 문제가 있다면 의사 측은 합리적 자료와 논리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민을 설득할 일이다. 정부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등 선진국의 관련 자료와 인구추계, 각종 연구자료, 통계 등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지만 의사 측에서는 아직 뚜렷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의대 증원은 시작에 불과하고 풀어야 할 과제는 쌓여 있다. 내년도 의료예산에서 필수·지역의료 확충을 위해 어떻게 재원을 분배할지 의대 교육에서 시급한 지원책은 무엇인지 의사들이 참여해 현장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 이미 의대별 정원까지 발표된 2000명을 정부가 뒤집지 않으면 일체 대화하지 않겠다는 자세는 '버티면 이기더라'는 학습 효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옳으냐와 무관하게 현재 구도는 위태로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의사 파업에 때마침 몰아닥친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의대 증원에 실패했다. 윤석열 정부 입장에선 의사 집단행동 국면에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의대 증원의 혜택은 오롯이 국민들의 것이다. 만약 의사가 이번에도 이긴다면 어쩌면 국가는, 그리고 국민들은 영원히 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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