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공공기관서 척결"···공무원들의 변명 들어보니

[관피아 근절 법안]

이상배 기자 l 2014.05.02 21:17
사진=뉴스1


# 경제부처에서 차관까지 지낸 뒤 금융 관련 협회장을 맡고 있는 A씨(58세). 그는 막내아들에게 절대 행정고시를 보지 말라고 했다. 평생 공무원으로 살아본 뒤 내린 결론이다. 자녀가 공무원이 되길 원하는 지인들에게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한다. 공무원에게 좋은 시대는 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A씨는 "장관이라는 꿈을 안고 평생 일했는데 이젠 장관 자리에도 공무원 출신이 아닌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많이 앉고, 난 운이 좋아 됐지만 산하기관장으로 가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신분 보장이나 연금 외에는 공무원이 누리는 이점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계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가 또 다시 '악(惡)의 뿌리'로 지목받고 있다. 해운조합, 항만공사 등 해양 관련 다수의 기관 또는 협회 등에 해양수산부 출신들이 포진하면서 정부의 관리·감독이 허술해진 것이 이번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여야 모두에서 '관피아 척결'을 위한 법령 개정 작업에 나섰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달 25일 공직 유관단체를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데 이어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야당에서도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관피아 방지를 위해 △공무원 퇴직 후 10년간 실명제로 취업 이력 공시(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국가고시 폐지(국가공무원법 개정안) △비공개 운영 정부 산하 위원회 속기록 공개(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 △공공기관 정보공개 강화(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의 법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공무원들도 할 말은 있다. 그동안 관 출신들이 유관기관의 수장을 맡았던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 공무원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고, '작은 정부' 논리가 비등하면서 정부의 정책수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각종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수습하려면 정책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공감대를 가진 공무원 출신이 유관기관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 공무원은 "퇴직 후 유관기관의 수장으로 가는 것은 공무원들의 낮은 처우 수준에 대한 '암묵적인 보상'"이라며 "공무원들이 쥐꼬리 봉급에도 양심을 지키면서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에는 퇴직 후 자리에 대한 기대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공무원 출신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한 정부부처 고위 공무원은 "일부 욕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업무 능력 등의 측면에서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유관기관들이 정부와 손발을 맞춰 일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무원 출신을 배제하면 현실적으로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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