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도 못 뚫은 여 '텃밭' 뺏은 '소사댁' 김상희

[the300][국회의원 사용설명서]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미영 기자 l 2015.05.12 06:01


인포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경기도 부천 소사구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4선 한 지역구다. 정치적으로 여당 성향이 강한 새누리당 텃밭이다. 야당 '거물'이었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1996년 15대 국회 총선 때 이곳에 도전해 쓴잔을 마셨다.


2012년 19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는 김문수의 '오른팔'인 차명진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이곳에 출마했다. 이에 맞서 당시 통합민주당서 내놓은 후보는 이름 한번 듣지 못했던 '아줌마' 였다.


아무도 야당의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다. 이 후보는 여성, 환경 관련 시민운동만 쭉 해 온 재야 인사였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화려한 '스펙'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의 의원은 이렇게 비례대표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30여년간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던 그는 2008년 자신이 대표로 있던 여성 단체 대표 자리를 후배 시민운동가들에게 물려주고 국회의원으로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현장에서 보이는 제도 개선점을 자신이 직접 국회에서 입법활동을 통해 실현해 보겠다는 결정에서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던 경력도 국회 입성의 발판이 됐다.


김 의원은 환경과 노동 전문성을 살려 4대강 사업, 여성 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며 국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19대 후반기부터는 국토교통위원회 상임위로 옮기면서 그의 관심사는 보다 확대됐다. 바로 한국 주거정책이다.


처음 국토위에 들어온 것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점검과 사후 관리를 위해서다.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4대강도 4대강이지만 당장 급한 불은 '전월세난'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방향을 틀어 서민 주거 대책방안을 강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한국 부동산 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판단, 이를 위한 제도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키워드-소사댁 ]


김 의원의 선거방식은 아주 간단하고 소박했다. 소사 지역구 골목골목을 누비며 자신을 알리고 사람들을 대면해 설득하는 것. 선거 기간 내내 얌전하게만 보이던 김 의원 스스로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큰 소리로 유세하기 보다는 하나 둘씩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이렇게 발품을 파는 동안 김 의원은 운동화 밑창이 닳아 세켤레를 갈아신었다.


그가 세 번째 쯤 부천 소사 지역구를 훑고 다녔을 때다. 선거운동을 하다 다시 들어선 시장에서 한 가게 아주머니가 김 의원을 알아보더니, "아이구, 이 정도면 됐네"하며 "이제 소사댁 해라"고 말했다. 그 이후 김 의원의 지역구 별명은 소사댁이 됐다.


실제로 그는 '엄마같이 살림하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18,19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하면서 국회의원들이 흔히 출판하는 자서전도 쓰지 않았다. 대신 그가 직접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엮은 책을 만들었다.


그가 쓴 '아름다운 동행'에선 구두를 닦는 사장, 스님, 여성축구단 회장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 보다 지역구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그들과 공감했다. 그는 이 책에서 아래와 같은 문구를 남겼다.


"이분들의 흘린 정직한 땀방울과 열정이 우리의 역사를 진전시켜온 원천이고 미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희망의 물줄기가 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됐다"


[키워드-여성]


김 의원의 이력에 '여성'이 빠질 수 없다. 이화여자대학교 제약학과를 졸업한 그는 장래가 보장된다는 '약사'의 진로대신 시민운동가의 삶을 택했다. 그가 주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여성인권문제였다.


김 의원은 "약사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효도한다고 하던데, 나는 약사의 길을 가지 않고, 돈도 못벌어 왔다"며 "하지만 부모님께서 내가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믿고 지지해주셨고, 그렇기에 내가 하는 일에 더 자부심을 가지고 매진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2007년 통합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오기 전까지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1976년 그가 졸업하던 해부터였으니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는 사회에 만연한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그것이 침해하는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여성민우회 대표까지 맡으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동안 가족법이 몇차례 개정됐고, 2004년 호주제가 폐지되는 성과를 얻어냈다.


김 의원은 "여성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국회의원일 때보다 더 많은 입법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그 당시 상임위 소위에도 참석해 국회의원을 감시하고 입법권자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등 열정적으로 활동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19대 전반기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당시 통영에서 일어난 아동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아동성폭력방지 특위를 만들었다. 이때 그는 여성운동을 하면서도 벽을 넘기 어려웠던 '친고제 폐지'를 이끌어내 여성계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대표법안]


김 의원은 '진보적인' 법안들을 다수 발의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시도를 반영하는 것이 곧 입법이라는 그의 철학에 기인한다. 국회의원 중 '정부'의 입법 청탁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김 의원은 반대로 시민사회의 입법청원을 받아들여 입법을 한 사례가 많다.


평가는 두 가지로 갈린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받아들여, 약자를 보호하는 법안을 실현시키는 '모범' 정치인이라는 평가와 시장경제를 오히려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섞인 평가가 공존한다.


휴일에 대형마트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이 대표적이다. 2012년 김 의원은 이종걸 당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김제남 통합진보당 의원과 함께 참여연대 등 전국 유통상인연합회 등과 함께 유통산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통과돼 건전한 유통질서확립,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간의 상생발전을 위해 필요할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거나 의무휴업을 강제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의 파장은 컸다. 대형할인마트업자들은 이러한 규제는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헌재는 이 규제가 헌법에 합치한다고 판단, 할인마트사의 소원을 각하해 일단락 됐다.


이 법안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동네 가게를 잠식하는 대형할인마트 규제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대형할인마트에게 패널티를 주는 것은 시장의 흐름을 막는 것이라는 회의적 의견도 있다. 이 법안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3월 김 의원은 전월세와 관련한 획기적인 법안도 내놨다. 전세를 3년으로 연장하고 1회에 한해 세입자가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의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다. 이는 야당이 지난 5년동안 주장해온 계약갱신청구권 (2년 전세, 1회 계약갱신) 보다도 급진적이다. 야당에서도 '우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을 정도다.


하지만 김 의원은 이 법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 김 의원은 "전월세난과 관련한 서민들의 어려움이 극에 달하고 있다"며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이 해묵은 대책을 가지고 서로 설왕설래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가 세입자의 거주 기간을 최대 6년을 보장하자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이 3년단위로 끊어지는 학제가 가장 큰 요인이다. 주거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학부모들의 심정과 아이들의 불편함을 입법에 반영했다.


김 의원은 이어 "현재 이 상황에 맞게 규율 하는 상황이 필요하다"며 "우리가 부동산이 광풍을 계속 맞아와서 전월세 관련해서 입법이 후진적이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

이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당에서도)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예전하고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예전에 썼던 약을 가지고 안된다.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한장의 사진]

지난 2011년 12월. 우리 사회의 대표적 비정규노동자인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방문한 김상희의원/사진=김상희 의원실 제공


[要! 주의-부끄러움은 이제 그만!]


김 의원은 스스로 "내가 어떻게 국회의원이 됐는지 몰라...나는 이런거 못할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김 의원은 과장을 조금 보태 '자랑포비아'가 있다. 스스로 '잘났다'라고 얘기를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이제껏 봐 온 국회의원처럼 되려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자신을 내세워야 하는 일이 많은데, 그렇게 할 성격이 못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의원은 의정활동에 무게중심을 두고 활동한다. 법안발의나 국정감사를 가장 열심히 하는 의원 중 한명이다. 국토위에서도 보좌진들이 가장 예의주시하는 의원실이기도 하다.


18대 국회 당시 쇠고기파동대책위원장, 4대강 특별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19대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장을 맡았으나 활동에 비해 대중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튀어야 어쨌든 정치권에서는 주목도 되고 그러는데 생각보다  그런 행동들은 조심스럽다"며 "당내에서 지도부를 공격으로 한다던가 이런 사람들이 존재감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오랜 시간동안 조직적으로 사회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 내에서도 조직의 규율과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아무래도 당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는 것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프로필]

1954년 충남 공주△ 이화여자대학교 제약학과 △ 여성환경연대 대표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  △18대 국회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통합민주당) △19대 국회의원


인포그래팩=이승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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