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문재인 브리지(Bridge)

[the300]

박재범 기자 l 2017.05.30 07:07
화기애애한 자리는 아니었단다. 오히려 처음엔 서먹서먹했다고 한다. 솔직히 공식 식사 자리가 편하긴 힘들다. 상하 관계의 밥자리면 더 그렇다. 몇 달 일을 해 온 사이라도 어려운데 새 CEO(최고경영자)와 계열사 사장간 만남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시쳇말로 뻘쭘한 자리다. 그래도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첫 만남이기에 색다른 감정도 있었을 거다.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위원간 오찬 간담회 얘기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3주째다. 파격적 행보, 참신한 인사, 거침없는 업무지시 등 변화를 느낀다는 평이 많다. 기대도 높다. 다만 아직 내각의 면면은 새 정부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는 인준 전이다. 청문회를 앞둔 국무위원은 고작 경제부총리와 외교부장관 정도다.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지명됐지만 국무위원은 아니다).

이날 오찬엔 공석인 법무부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뺀 16명의 국무위원이 참석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금융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도 함께했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이지만 "엄연한 문재인 정부의 장관들"(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첫 내각”이라고도 불렀다.

이날 오찬은 문재인 정부 첫 내각의 첫 회동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무회의를 주재하지 않았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일자리위원회 설치안을 처리하는 국무회의도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대신 이끌었다.

문 대통령과 애매한 동거를 하는 내각의 첫 만남, 참석자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웃음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는 좋았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국무위원들에게 청와대는 낯선 곳이 아니다. 장관으로만 수 십번 들어가 회의를 했던 곳이다. 그래도 이날은 달랐단다. 얘기를 전해주는 이들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들을 ‘불러주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 준’ 때문이다. 한 참석자는 “전임 정부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될텐데 직접 우리 얘기를 들어준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다른 인사의 전언은 이렇다. “장관들이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를 생각하지 못했었다. 말하는 것을 듣다보니 예전과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얘기가 오가면 분위기도 활발해졌다”

또다른 장관도 비슷한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역대 정부에선 이런 적이 없었는데…”. 장관들은 현안을 소개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밝혔다.

“내수 부진 과제가 여전하다. 이 불씨를 살리는 게 당면과제다”(유일호 경제부총리) “노동 3법 개선으로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바꿔주는 게 필요하다”(이기권 고용노동부장관) “가계부채 대책은 금융정책만으로 안된다. 기업구조조정 문제는 확고한 원칙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임종룡 금융위원장) 등.

의례적 칭송이나 칭찬, 격려는 없었다. 가식 대신 실용적 주문이 주를 이뤘다. 사심이 없기에 무거운 주제가 자연스럽게 던져졌다. 전임 대통령과 인수인계할 수 없는 문 대통령 입장에선 이만한 인수인계 과정도 없었을 거다. 문 대통령이 “(장관들의) 말씀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인수인계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해달라”고 당부한 것도 스스로 얻은 게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이걸로 끝나선 안 된다. 장관들이 가진 노하우는 상당하다. 그들의 정보와 경험, 자원은 국가의 자산이다. 하지만 연기처럼 사라진다. 후임자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많지만 속으로 삭인다. 괜한 오지랖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한 설명이 변명이나 핑계로 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한다. 자신에 찬 후임자는 전임자와 차한잔을 생각지 않는다.

그렇게 단절된다. 대통령직 인수를 연구한 이경은 박사는 조언한다. “대통령은 장관 후보자들에게 반드시 퇴임하는 장관과 만남을 가지라는 지침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국정의 연속성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표지갈이’가 아니라 바로 이거다. 문 대통령도 말하지 않았나. “정권은 유한하나 조국은 영원하다”. 그 시작과 끝은 장관끼리의 인수인계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