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칼럼]'명문장수기업육성' 아닌 '부의 무상이전'

[the300]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가업상속공제 확대안의 문제점'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l 2014.12.11 06:10
우리나

라의 상속 및 증여세 최고 세율은 50%로 모든 세목 중 가장 높다. 만약 500억원을 상속받는 피상속인은 공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약 25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야한다. 상속 및 증여에 대한 높은 세금은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조세 원칙에라 부(富)의 무상 이전을 막고 부의 편중을 완화하는 정책적 목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 18조에 규정된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활용하면 이 모든 상속세 부담을 없앨 수 있다. 일정 요건만 갖추면 재산가액에서 경영연수에 따라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정부안은 이러한 가업상속공제제도의 확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란 오랫동안 기업을 영위해온 기업의 오너가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상속세 부과로 가업승계가 힘들어지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100년 이상 장수하는 명문기업이 나오도록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일종의 특혜인 만큼 일정 요건 하에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제출된 정부안은 가업상속공제의 당초 도입취지와는 달리 과도하게 범위가 확대되고 공제폭도 커졌다.

2007년 신설될 당시 가업상속공제는 연매출 1000억원 이하 중소기업에 대해서 최대 1억원까지 공제해주었다. 이후 수차례 변경을 거쳐 작년에는 3000억원 이하 중견기업까지 범위를 확대해 주었고 공제 한도 또한 최대 500억까지 허용하도록 개정됐다. 불과 7년만에 공제 한도가 500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제출된 정부안은 적용 대상을 매출액 5000억원 미만으로 확대하고 공제 한도 또한 최대 1000억원으로 확대했다. 정부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대한민국에서 가업승계대상에서 제외돼 상속세를 정상적으로 내는 기업은 전체 51만7091개 법인 중 대기업을 포함해 약 0.1%인 714개뿐이다. 또한 개정으로 인해 새롭게 적용대상으로 편입된 276개 기업은 기업당 최대 약 500억원, 모두 합하면 최대 약 14조원 상당의 세금을 면제받게 된다.

전통 있는 명문 가족기업을 육성해 고용과 성장을 정부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방향은 옳다. 그러나 방법이 이와 같이 수백억원의 세금을 면제해주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 정확한 효과 분석 없이 거의 매년 혜택을 대폭 확대해왔고 현행 제도가 개정된지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제도를 통해 상속세를 공제받은 사람이 2012년 58명, 343억원에서 2013년에는 70명, 933억원으로 급격히 증가했으며 올해도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 제도가 기업의 오너가 사망하였을 때 적용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수혜자는 이미 대폭 늘어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현행보다 더 확대한 정부안은 가업 승계를 아주 쉽게 그리고 대폭적으로 허용하여 상속세 제도를 무력화시킨 사상 유례가 없는 입법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피상속인 요건도 대폭 완화했다. 기존 경영기간 10년을 7년으로, 보유지분 50% 이상을 30% 이상으로 완화했다. 상속인 요건도 가업을 승계하기 위해 2년 이상 기업에 종사해야 했으나 폐지했다. 상속 후 업종을 유지해야하는 의무도 완화했고, 물려받은 가업 재산의 처분을 금지하는 요건도 삭제했다. 상속 후 고용유지의무를 부과하는 사후관리 기간도 10년에서 7년으로 축소했다. 이쯤 되면 명문장수기업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그저 여유있는 고소득층의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방안이다. 당초의 입법 취지와 달리 사업주의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것.

정리해보면 정부의 가업상속공제 확대안이 당초 내용대로 통과됐다면 상속증여세의 본질적 기능인 소득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고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지 못해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장수기업의 상속인이 기업을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경영하도록 정부가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하겠지만 요건의 급격한 대폭 확대는 조세정의와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현행 제도를 시행해 나가면서 효과를 연구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보완해나가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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