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리포트]국회에 발묶인 '국제석유거래업'

이현수 기자, 그래픽=이승현디자이너 l 2015.05.29 09:17
가짜석유 or 검은진주?…보세구역 '석유블렌딩' 왜 안되나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종합보세구역에서 석유제품의 혼합·제조(블렌딩) 및 거래를 허용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오일허브'의 핵심사업 가운데 하나라는 정부 여당의 주장에 대해 야당은 사업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맞서고 있다.


28일 국회 등에 따르면 석대법 개정안은 정부가 지난해 12월16일 발의한 이후 반년 가까이 국회 계류중이다. 개정안은 석유업종에 기존 석유정제업, 석유수출입업, 석유판매업 외 '국제석유거래업'을 신설했다. 또 국제석유거래업자가 종합보세구역에서 석유제품을 블렌딩하는 것을 허용했다.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 핵심열쇠…싱가포르 물량 잡는다

현행법은 국내서 석유제품 블렌딩으로 만들어진 물질을 '가짜석유'로 규정하고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나프타와 리포메이트를 혼합해 휘발유를 만드는 게 대표적 예다. 


법은 오직 석유정제업자에 한해 수출목적으로 블렌딩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제석유거래업자도 보세구역에서 자유롭게 혼합·제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현재도 석유정제업자에 한해 가능한 블렌딩을 국제석유업자로 확대하는 이유는 외국인 트레이더가 싱가포르,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을 중간에서 가공하기 위한 것이라는게 정부 설명이다. 우리나라 탱크터미널에 원유를 일단 저장하게 하고, 블렌딩을 한 뒤 싱가포르 등으로 보내자는 것. 이 과정에서 저장 수수료, 운송 서비스료 등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계산이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블렌딩 제품을 허용한다. 


개정안은 현재 여수와 울산시가 추진중인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과 맞닿아 있다. 이미 국제탱크터미널이 들어선 여수는 블렌딩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규제 때문에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울산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탱크터미널을 짓고 있으며, 활성화를 위해선 외국인 사업자의 블렌딩 허용이 필수적이란 입장이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 국장은 국회에서 열린 법안소위에서 "석유 트레이더들은 원유를 탱크터미널에 집어넣은 상태에서 혼합해 외국으로 보내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안 돼 싱가포르에 뺏겨온 영역"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자는 것"이라고 개정안 취지를 설명했다. 

◇'가짜석유', 국내 석유시장 진입 우려?
개정안은 지난해 12월19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에서는 지난 4월 두 차례 산업위 법안소위에서 논의됐으나 보류된 상황.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야당 위원들은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의 타당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종합보세구역에서 제조된 '가짜 석유'가 국내에 유통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산업위 소속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국내에선 혼합석유를 가짜 석유라고 규제하는 마당에, 아무리 보세구역이라 하더라도 허용하는 것에 있어 철학적인 문제가 있다"며 "국내와 국제적 기준이 달라져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 국장은 "가짜 석유가 국내에 들어올 가능성은 차단돼 있다"며 "다만 품질검사를 거친 국내 수입물량이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트레이더의 원유가 보세구역에서 국내로 반입되려면 석대법이 정하는 품질기준을 거쳐야 한다는 것. 또 국내 반입 시엔 '수입'으로 간주돼 수출입업자 자격을 갖춰야 하고 관세도 납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막전막후 속기록]"오일허브 핵심인데" "사업자체에 문제"


김동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사진=뉴스1



"다음기회에 하는 것이 어떤가 싶습니다. 제가 보니까 그렇게 급한 법안이 아니니까…"(홍영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야당 간사)

"지금 6월 국회 일정이 어떻게 될지 사실 불투명합니다…투자 부분이 있고 경제를 살리는 부분들이 있다면 가는 게 맞습니다…"(이진복 국회 산업위 여당 간사)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 개정안을 심사하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여야 위원들은 경제성과 사업타당성을 두고 맞섰다. 지난달 23일 열린 산업위 법안소위에서 여당은 '투자적기'를 놓칠 수 있다며 빠른 법안처리를 주장한 반면, 야당은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를 근거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與 "KDI 사업타당성 입증…투자적기 맞춰야"


여당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에서 경제성이 입증된 만큼 빠른 법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수와 울산에 대규모 석유 저장시설을 구축하는 '동북아오일허브' 사업과 관련, KDI는 지난 2009년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해 '생산유발효과 4조4647억원, 임금유발효과 6059억원, 고용 2만2000여명' 등의 결론을 내렸다.

산업위 소속 여상규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법안소위서 "싱가포르가 하는 오일허브 역할을 우리가 해보자는 것이고, 충분한 여건이 갖춰져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라며 "투자적기를 놓치게 만드는 것보다 (법안을)통과시켜 세수증대 일자리 창출 효과를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홍지만 의원 역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과일을 제 때 따먹을 수 있는 위치에 울산이 있고 여수가 있다"며 "국가경제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통과시켜줘야 한다"고 밝혔다. 


전하진 의원은 "이런 법을 국회에서 자꾸 잡고 있다는 것은 기업하는 사람들을 (어렵게 하는 것)"이라며 "해 주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입장을 밝혔다. 

◇野 "국회 예산정책처 재검토 보고서…더 논의해야"
반면 야당은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토대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공기업 사업영역 확장 평가와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석유공사의 재무건전성 악화를 우려하고, 동북아 오일허브사업 사업규모와 건설시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정부가 2조원의 민간자본을 투자해 울산과 여수에 3660만 배럴 규모의 탱크터미널을 건설하려는 것과 관련 "울산이 추진중인 탱크터미널 규모와 단계별 건설시기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법안소위에서 "배럴당 100달러까지 갔던 유가가 5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국회예산정책처의 재검토 의견은 대규모 정부 프로젝트를 이 시기에 추진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말했다. 

홍익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사업 자체에도 좀 문제가 있는데, 싱가포르가 오일허브가 된 것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시장으로서의 기능 덕이지 설비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산업부는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와 관련 "예산액을 1419억원을 기준으로 분석했는데 실제 투자액은 1000억원이다"고 해명했다. 석유공사 재무건전성 우려 등과 관련해선 "석유공사 지분을 30% 미만으로 제한했다"며 "자원개발처럼 리스크가 큰 게 아니다"고 밝혔다. 

"안하면 바보"…울산지역 의원들 '석대법' 통과 총력전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1월 울산항 동북아 오일허브사업 기공식에 참석해 주요참석자들과 함께 기공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박맹우 현 의원이 울산시장을 할 때 이것을 하기위해 국제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얘기를 했어요. 부가가치가 굉장히 높다는 것은 저도 들어서…"(이진복 새누리당 의원)

"현 김기현 울산시장 얘길 들어도 '이것은 안 하는 게 바보다. 국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가만히 있는 게 바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강조하더라고요."(홍지만 새누리당 의원)

정부의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은 울산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항로에 대규모 석유저장시설을 지어 국제 석유거래의 중심지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인데, 실제 2조원 규모의 저장시설 구축이 진행 중이다. 부지면적은 90만6000㎡, 저장용량은 2840만 배럴에 달한다.

울산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들은 보세구역 내 석유제품 혼합을 허용하는 '석유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개정에 힘을 쏟고 있다. 울산 중구가 지역구인 정갑윤 국회부의장은 지난달 24일 산업통상자원부 기조실장에게 관련 보고를 받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법적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부의장은 특히 국회 예산정책처의 사업 재검토 보고서에 대해 "지난해 예산정책처가 사업성 등에서 과하게 판단해 지나치게 우려한 내용을 들어 (법안이)제 때 처리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깝고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 남구갑을 지역구로 둔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 역시 법개정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는 29일 산업위 전체회의서 "성공적인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을 위해 국제 석유거래업 신설이 조속히 추진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울산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에는 중국 최대 정유회사인 시노펙(Sinopec)이 참여의사를 표시한 상태다. 시노펙은 현재 사업 철수 의사를 밝힌 네덜란드 석유저장업체 보팍(Vopak)의 대체사업자로도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당초 석유공사, 보팍, S-Oil 등을 대주주로 한 법인을 출범시킬 예정이었으나, 보팍이 저유가 등을 이유로 올초 투자 취소 결정을 내렸다.

한편 석유공사는 2008년 11월 석유공사와 SK에너지, GS칼텍스 등이 참여한 오일허브코리아여수(OKYC)를 설립하고, 29만 1343㎡에 탱크 36기를 건설했다. 여수터미널 저장 규모는 820만 배럴이며, 지난달 기준 계약률은 100%다.

정부 관계자는 "저장탱크사업은 물량이 빠져나가면 저장률이 줄게 돼있어, 저장률보다는 탱크 계약률이 중요하다"며 "여수의 물동량 늘고 있고 트레이딩도 상당히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수에는 석유 블렌딩 시설이 있지만 규제 때문에 사용하지 못해, 석대법이 개정될 경우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국내정유사-국제업자 '가짜석유' 경쟁 초읽기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국내업체 입장에선 한편으론 기회고, 한편으로는 경쟁 요인입니다. 동북아 시장 트레이딩 수요를 잡는 측면에선 기회요인이지만, 국내 수입물량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채희봉 산업부 에너지산업정책 국장)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대법)' 개정을 통해 외국인 국제석유거래업자로부터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국내 반입 시 기존 국내 정유사들과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유 업계 및 야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6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석대법에 국제석유업을 신설할 경우, 국제석유업자가 국내 보세구역에 석유제품을 들여와 혼잡·제조(블렌딩)하는 게 가능해진다. 국내 반입을 시도하면 수입압력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법에 따라 보세구역에서 블렌딩한 석유를 그대로 들여올 수는 없고, 국내 품질규격을 맞춰야 한다. 블렌딩 제품은 싱가포르 등에선 허용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유통이 금지돼있으며 '가짜석유'로 취급받는다.

아울러 국내 반입을 원하는 국제석유거래업자는 '석유수출입업'으로 새롭게 등록해야 한다. 또 수출입업으로 등록하려면 국내에 석유 저장시설을 보유해야 한다. 수입업자를 통해 국내에 반입하려는 경우에도 관세를 납부하고 품질기준을 지켜야 하는 절차는 동일하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 "외국인 국제석유거래업자가 국내 석유 유통시장에 들어오기 위해선 석유수출입업자 등록을 별도로 하고 똑같은 의무를 져야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석유수출입업자가 되기 위한 저장탱크를 보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이 블렌딩한 제품을 기존 석유수출입업자 또는 국내 정유사에 팔아야한다"며 "팔면 정유사가 그것을 가지고 들어오는 형태가 되는 것인데 이 제품은 규격에 맞아야 하며, 품질관리원 전수조사를 받게된다"고 설명했다.

채 국장은 국회 산업위 야당 의원들의 수입압력 지적에 "피해가 없는 것보다는 사실 간접적인 경쟁압력으론 작용한다"면서도 "저희가 이미 50% 이상을 해외 수출하는 마당에 국내 정유사가 계속 과점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내 시장을 보호한다는 것은 얘기가 안 된다, 수입압력 경쟁압력도 나름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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