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다"…朴대통령의 달라진 화법

[the300][이상배의 이슈 인사이트] 국민적 공감대와 초당적 신뢰 전제돼야

이상배 기자 l 2015.08.08 05:52


"지금 우리가 가고자 하는 개혁의 길은 국민 여러분에게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개혁'을 비롯한 공공·교육·금융 등 '4대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호소한 6일 '대국민 담화'를 시작하며 던진 말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들에게 고통을 인내하고 희생을 감내해 줄 것을 요청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강조했지만, 그 길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했던 발언들의 화법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과거 박 대통령의 발언 속의 '국민'은 정치권이 고통과 부담을 강요해선 안 되는 대상이었다.

지난 2월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치권의 '증세' 논의에 대해 "경제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세수가 부족하니까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된다 하면 그것이 우리 정치 쪽에서 국민에게 할 수 있는 소리냐"며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현 정부의 4대 국정기조 가운데 하나로 '국민행복'을 내건 것도 이런 인식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여러분에게 힘든 길이 될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은 박 대통령이 '4대 개혁'을 얼마나 절박하고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개혁' 문제를 최대한 솔직하고 진정성 있게 다루겠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말 청와대 관저에서 보낸 휴가 중 직접 담화문의 표현을 일일이 다듬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하는 화법의 대명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스턴 처칠 영국 수상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들에게 전황을 낙관적으로 전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애썼다. 이는 국민들을 결집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처칠은 1940년 6월 '그들의 가장 멋진 때'라는 제목의 전시 연설에서 "나는 우리 앞에 놓인 호된 시련의 엄혹함을 과소평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영제국과 영연방이 1000년간 지속된다면 훗날 사람들은 지금이 가장 멋진 때라고 평가할 것"이라며 나치 독일과의 참혹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민들을 북돋았다.

루즈벨트도 미국의 2차대전 참전 이후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 앞에는 밤낮으로, 매 시간마다, 아니 1분마다 되풀이되는 끔찍하게 힘겨운 과제가 놓여 있다"며 "우리 모두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 닥쳐왔다"고 강조했다. 

반면 린든 존슨 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전 당시 문제를 은폐하거나 축소해 국가를 분열로 몰아넣은 대표적인 사례다. 존슨은 1964년 대선 당시 "미국의 청년들을 1만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선 직후 베트남전 확전에 동의했다. 대규모 추가 파병에 대해서도 그는 "몇몇 부대의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실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화법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와 초당적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문역이었던 정치 전략가 딕 모리스는 저서 '파워게임의 법칙'(Power Plays)에서 "지도자는 당면한 과제가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하는 지 솔직히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의회 전체의 신뢰와 반대세력과의 화합이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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