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상승했지만...시간 쫓기는 선거구획정위

[the300]'들러리→독립기구'로 격상…권한 확보했지만 졸속 심사 우려 제기

박경담 기자 l 2015.08.13 10:44
김대년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 4차 전체회의 '제20대 국회의원 지역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주재하고 있다. 여야가 참여하고 있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선거구획정위가 요청한 획정 기준 및 의원 정수를 확정 시한(13일)을 불과 이틀 남겨둔 이날까지도 의견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선거구획정위는 선거구 획정의 전제 조건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선거구 획정안의 국회 제출 기한인 오는 10월13일까지 시간이 촉박한 만큼 계획대로 공청회를 열고 국회의원 정수 및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 또는 그 비율, 선거구 획정 기준,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 확보 방안 등의 의제를 다룬다. 2015.8.1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을 위해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요청한 의원정수 및 획정기준 등을 마감시한인 13일까지 제출하지 못했다. 마감이 늦어질수록 선거구 획정 졸속 심사는 물론 선거구획정위에 부여된 독립성과 권한도 퇴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는 지난 5월 선거구획정위를 국회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로 이관토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선거구획정위의 활동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획정안이 무게감을 갖도록 했다. 선거구 획정에 있어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고 인구, 생활권, 지세, 교통 등 여러 사안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선거구획정위는 총선 18개월 전에 운영을 시작해 선거 13개월 전까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토록 했다. 다만 20대 총선에 한해 선거 6개월 전인 10월13일까지 획정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아울러 선거구획정위가 제출한 획정안은 국회 심의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로 직행해 정치권이 손질할 수 없도록 했다.

선거구획정위에 독립성과 권한을 부여한 까닭은 과거 선거구획정위가 부실하게 운영된 탓이 크다. 정치권 이해관계에 따라 선거구획정안이 좌지우지돼 선거구획정위는 들러리에 불과한 경우도 많았다. 

선거구획정의 역사는 1994년을 경계로 나뉜다. 당시 대통령선거법, 국회의원선거법, 지방의외선거법, 자치단체장선거법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으로 통합되면서 국회 내 선거구획정위 설치가 명문화됐다. 선거구 간 주민 수 격차를 줄임으로써 대표성의 차이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였다.
15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현동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에 마련된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 사무국에서 김대년 위원장과 위원들이 현판 제막을 마친 뒤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이날 출범한 선거구획정위는 공청회 등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총선 6개월 전인 오는 10월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왼쪽부터 강경태 신라대 교수, 김동욱 서울대 교수, 조성대 한신대 교수,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대년 위원장, 이준한 인천대 교수, 차정인 부산대 교수, 가상준 단국대 교수, 한표환 충남대 교수. 2015.7.1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별도의 선거구획정위가 구성되지 않았던 1994년 이전까지 정치권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거구를 획정했다. 선거구를 그을 때 '20만 명당 국회의원 1인 선출' 같은 대략적인 기준만 적용돼 게리먼더링(특정인이나 특정집단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짜는 것)을 견제할 통로는 전혀 없었다.  

15대 총선을 앞두고 출범한 선거구획정위는 현재와 같이 인구 상·하한선을 획정 기준으로 뒀다. 가령 획정 기준을 '인구 하한 7만5000명, 상한 30만 명'으로 명시해 도시와 농어촌 간 인구편차를 고려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시 선거구획정위는 현직 국회의원이 획정위원을 맡아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17대 국회부터는 선거구획정위원으로 순수 민간인만 포함될 수 있도록 선거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활동 시한이 명시되지 않아 획정 심사는 들쑥날쑥했고 정당 간 이해관계로 인해 선거구획정안이 선거 코 앞에야 통과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처럼 수십 년간 부실 운영된 선거구획정위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통과로 위상이 높아졌지만 정개특위가 획정 기준 등을 제 때 넘기지 않아 활동에 지장이 생겼다. 수십 곳의 재획정 선거구를 검토하기엔 획정안 법정 제출 시한(10월13일)까지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선거구획정위 업무가 정개특위 논의와 연동됨에 따라 독립성이 부족했던 과거와 바뀐 게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선거구획정위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가 선거구획정의 전제조건인 의원 정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비율, 획정 기준을 정해주지 않아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었다. 선거구 획정 작업을 지체할 경우 과거의 퇴행적인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다"라며 자체적인 선거구 획정 업무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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