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KF-X·대구광역철도'…예산안 두고 국회·정부 '힘겨루기'

[the300][런치리포트-2016 예산워치(3-③)]

지영호 기자 l 2015.11.03 05:53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15.11.2/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년도 예산심사를 두고 편성권을 쥐고 있는 정부와 심의권을 가진 국회의 갈등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예산이지만 최근 이슈들과 맞물리면서 예산정국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진다.

2일 국회에 따르면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부각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예산과 사실상 기술이전이 어려운 것으로 드러난 한국형전투기(KF-X) 사업 예산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당초 5일에서 3일로 앞당겨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 확정고시를 강행하기로 하면서 이날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파행을 맞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정부 비공개 TF팀 단장을 맡고 있는 오석환 충북대학교 사무국장의 출석 여부를 놓고 정부·여당과 야당 간에 대립 구도를 펼쳤다.

역사교과서 갈등이 폭발하면서 3일 예정된 본회의 일정도 불투명하다.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내일 아침 10시 본회의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다"고 했고, 김영록 수석부대변인은 "정부가 확정고시를 강행한다면 본회의 (참석) 여부를 내일 오전 9시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시행령까지 변경하면서 예산 과다책정 논란이 불거진 대구권광역철도망 사업까지 정부와 국회의 힘겨루기가 예산 정국 막바지에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그동안 중립적 시각을 견지해온 국회 예산정책처가 정부의 비용추계 오류 등을 지적하면서 국회의 입장에 힘을 싣고 있어 행정부와 입법부의 '예산 전쟁'은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의 갈등은 결국 예산정책처의 예산까지 위협하고 있다. 정부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여당은 지난달 29일 운영위원회 예산소위에서 157억9900만원 규모의 예정처 예산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의결하지 않았다. 예정처 예산 전반을 국정조사해야 한다는 요청까지 나왔다.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입장이 다른 연구결과를 낸데 따른 후폭풍이란 관측이다.

◇역사교과서 예비비 과다편성 논란

역사교과서 예산 논란의 중심에는 예비비가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변재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통해 공개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편찬 비용추계'에 따르면 중학교 역사1·2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등 3권을 국정으로 만들면 6억5005만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여권과의 관계를 고려, 정부예산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던 예산정책처까지 거들면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런 이유로 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44억원 규모의 예비비의 구체적인 사용내역과 함께 어떤 근거와 절차를 거쳐 편성했는지 자료요구를 한 상태다.

이에 정부 측은 반격에 나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예결특위에 나와 "예산정책처의 추산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강조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다보면 근본적인 체계 교체로 인한 비용 부담과 논란에 따른 여론 수렴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예결특위 여당간사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하는 등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도 국회의 요구를 수용키로 했다. 2일 열린 예결특위에서 최 부총리는 이날까지 예비비 편성 내역을 공개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2일 예결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역사교과서 예비비 집행 내역 자료 제출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 항의하며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잠정 거부 중이다.

◇예결위, KF-X 사업 예산 증액 추진…정부-국회 대리전 양상

미국으로부터 핵심기술이전이 사실상 무산된 KF-X 사업에 예산을 추가 배정할 지도 뜨거운 관심사다. 정두언 국방위원장과 김재경 예결특위원장이 전면에서 맞대결하는 구도지만 국회(정두언) 대 정부(김재경)의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게 국회 안팎의 평가다.

방위사업청이 요구한 1618억원을 기재부가 670억원으로 삭감했고, 국방위도 이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예결위에서 다시 인상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폭발했다. 김 위원장은 1일 "(KF-X 사업을) 할거면 제대로 해야하는데 이것(670억원) 가지고 하겠나"라며 "아마 예결위에서 좀 늘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에 정 위원장은 "(김재경 위원장이) 상임위를 개인 상임위로 생각하고 있다"며 "(이 사업에 예산 늘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책임질 사람은 하나 없고 (국방위원장인) 나만 책임져야 한다. 아무래도 김 위원장이 진주 공천을 받으려고 무리수를 던지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KF-X 개발사업은 기술이전 논란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재신임하고 있는 18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으로 김 위원장의 지역구인 진주와 가까운 사천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편 카터 미 국방장관은 2일 KF-X 기술협력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KF-X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미국 법에 의거하면 한국측에 특정 기술을 이전하는 데 제한이 된다"며 "이 협력체(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언급된 한미 양국 협의체, 워킹그룹)가 미국법을 바꿀 수는 없다"고 분명히 했다.

◇시행령 어겨가며 예산편성 강행

모법의 취지를 넘어서는 권한으로 논란이 됐던 시행령을 정부가 어겨가면서까지 예산을 편성한 사례도 있다.

지난달 20일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에서 김윤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구권 광역철도가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위반했느냐"며 "앞으로도 시행령 개정을 전제로 국토부는 자신감 있게 일을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대도시권 광역교통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상 대구권에 구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도 광역철도로 사업을 바꿔 추진하는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박민우 국토부 철도국장은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을 전제로 광역철도 지정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떨궜다.

유일호 당시 국토부 장관도 "시행령 개정 문제는 우리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잘못을 시인한 뒤 "예산편성지침에 있는 사업비 배분기준이 예시인 측면이 있어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다는 말씀 드린다"고 답했다.

국토부가 7월 작성한 도로·철도 관련 내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국토부는 구미~동대구~경산 61.9㎞ 구간을 잇는 대구권 광역철도망 건설사업에 168억원을 배정하기로 했다. 6월 확정한 중기재정계획상 연도별 투자계획과 국토부가 기재부에 제출한 부처예산안의 내년도 예산요구액은 12억원이었다. 국토부의 요구액이 168억원으로 증액되자 기재부는 이를 그대로 수용해 정부안으로 예산안을 확정했다.

반면 대구 중구·남구를 지역구로 하는 김희국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대구 구미 구간은 62km여서 일반철도로 진행해야 할 사업임에도 40km 이내 기준인 광역철도로 추진했다"며 "정부가 돈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대구시에 부담을 시키려 한다는게 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