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완이법이 만든 '시그널'…공소시효 추가개정은?

[the300]'DNA 등 증거 있을 때 공소시효 중지' 관련 법 법사위 계류 중

배소진 기자 l 2016.02.07 08:00
/사진제공=tvN


과거로부터 오는 무전을 통해 현재 시점에서 장기 미제사건을 풀어나간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연출과 스토리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tvN 드라마 '시그널'. 

드라마 속에서 경찰은 15년 전 '김윤정 유괴살해사건'의 진범을 잡고도 공소시효 만료로 그를 처벌하지 못한다. 이를 계기로 여론이 들끓고 국회는 부랴부랴 살인 등 강력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해버린다. 지난해 7월 국회를 통과한 '태완이법'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태완이법은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시그널'에서 모든 장기 미제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폐지가 소급적용되며 무려 26년전의 경기남부 연쇄살인사건(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모티브가 된 허구의 사건)까지 재수사 대상에 오른 것과 달리 현실에선 2008년 8월 이전 범죄는 영원히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공소시효란 범죄사건 발생 시점부터 일정한 기간이 지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형벌권을 소멸해주는 제도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 등 사형에 해당하는 극악범죄의 공소시효는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됐고, 지난해 태완이법으로 완전히 폐지됐다. 또 2012년엔 영화 '도가니'의 영향으로 13세 미만 이동 및 장애인 대상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도록 개정되기도 했다.

대구 황산테러 피해아동 故 김태완 군의 가족과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4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를 골자로 한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지난 1999년 5월 대구의 한 골목길에서 6세 아동이 신원불상의 남성으로부터 황산테러를 당한 뒤 숨진 '태완이사건'은 살인죄 공소시효가 25년으로 개정된 2007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이유로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았다/사진=뉴스1


현재 국회에는 또 다른 공소시효 관련 법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해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 등이다.

두 법은 모두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경우 DNA 등 과학적 증거가 있을 때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가해자가 특정될 때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도록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같은 내용으로 동시에 발의된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과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은 각각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와 여성가족위원회로 나뉘어 법안 심사를 받았다.

이 중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은 지난달 11일 여가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며 순탄하게 처리되는 듯 했다.

여가위 위원들은 이구동성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과 같은 강력범죄의 경우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감정이 진정된다고 볼 수 없고, 최근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등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화․폐지되는 추세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위원의 검토의견에 동조했다.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개정안 원문을 아예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로 더 명확히 강화하는 수정안을 법사위로 올려보내기까지 했다.

/사진제공=tvN 캡처


이 법은 지난 1일 국회 본회의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하지만 여가위가 '통과'로 의견을 모은 이 법은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DNA 증거 등 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라는 표현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 

전문위원과 법사위 대다수 의원들은 '등'에 어떤 증거가 포함될 것인지 그 범위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 '과학적'이라는 개념도 언제든지 변경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어 법안의 신중검토를 요구했다. 

함께 발의된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도 '신중검토'의 이유가 됐다.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은 법사위 고유법안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제1법안심사소위에 잠들어 있다.

노철래 새누리당 의원은 법안의 취지를 이해한다면서도 "1소위에 계류 중인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을 병합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위원 역시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을 제외하고 이 법(아동·청소년 성보호법)만 공소시효를 없애면 어느 법으로 기소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과학적 증거라는 것을 어떻게 판단한 것인지, 뭐가 과학적이고 비과학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같은당 이한성 의원도 "DNA는 어찌보면 사진보다도 과학적 증거라 하기 어렵다"며 "증거만 가지고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법을 미리 통과시켜서 형사법을 따르게 하는 건 위험하고 법체계상 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고 법개정에 부정적인 의사를 드러냈다.

강은희 여가부 장관은 "DNA는 성폭력 사건에서 명확한 증거가 된다.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하는 것보다 더 길게 시효가 필요한 사건이 생길 수도 있다"고 읍소했다. 법안을 발의한 서영교 의원도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을 먼저 통과시키고 1소위 계류된 성폭력범죄처벌 특례법을 통과시키면 되지 않나. 서로 다른 법이 아니니 같이 통과되는 게 맞다"고 강하게 항의했으나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 1일 법사위원들은 이 점을 들어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을 제2법안심사소위로 회부키로 결정했다.

체계자구를 넘어 추가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법안들이 가는 제2법안심사소위는 법사위의 '블랙홀'이라고 불린다. 한 번 제2소위에 회부된 법안은 좀처럼 법사위 전체회의, 본회의에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법사위는 오는 16일 제1소위와 제2소위를 잇따라 개최할 예정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법안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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