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사이트] 개헌 말곤 정말 답이 없나

[the300] '대통령 5년 단임제' 폐해, 국민투표 필요한 '개헌' 대신 '정무직 확대'로 해결할 수도

이상배 기자 l 2016.06.20 05:50


'개헌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불을 지피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맞장구치고 나섰다. '87년 체제'가 약 30년간 이어지며 역사적 효력이 다했고,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한계가 분명히 확인됐다는 게 명분이다. 국민 대다수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개헌론의 방점은 권력구조 개편에 찍혀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극복이 핵심이다. 기본권 문제도 거론되지만, 전선이 확대될 경우 자칫 개헌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권력구조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론'이 '전면적 개헌론'보다 우세한 이유다.

그러나 '원포인트 개헌'이라도 국민투표 절차는 피할 수 없다. 개헌을 위해선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찬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투표율이 50%를 넘지 못하면 개헌 자체가 불가능하다.

결국 국민들을 설득해 개헌 투표에 동참하게 만드는 게 개헌 성공의 관건인 셈이다. 4·13 총선 투표율조차 50%대에 그쳤음에 비춰 개헌을 하겠다고 대한민국 유권자 가운데 50% 이상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과 국회 등 모든 정치권이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한 일이다.

따라서 개헌이 한번 추진되기 시작되면 민생 등 시급한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개헌에 적잖은 정치·사회·경제적 비용이 소요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두고 '블랙홀'이라고 했던 건 이런 맥락에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이런 정치·사회·경제적 비용을 무릅쓰면서까지 반드시 개헌을 해야만 하는가? 개헌 말곤 현행 5년 단임제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5년 단임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건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대개 정부조직 개편과 조각, 공공기관장 인선 등을 마치고 나면 집권 1년차의 대부분이 흘러간 뒤다.

그리곤 집권 중반기부터 '레임덕'이 찾아온다. 대통령 중임이 불가능하다 보니 행정부의 실·국장급 이하는 이때부터 현 정권보단 다음 정권, 국정과제보단 자신의 다음 자리에 더 정신이 팔린다. 행정부의 실무 책임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국정과제가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개헌을 하지 않고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한가지 있다.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고 해임할 수 있는 '정무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지금은 장·차관급만 정무직이지만, 차관보·실장급(1급) 또는 국장급(2급)까지 정무직에 포함시키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장관·부장관·차관급 뿐 아니라 차관보·국장급까지 모두 정무직으로 분류돼 있다. 때문에 대통령이 국장 자리까지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물을 앉힐 수 있고,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해임할 수도 있다.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 이후 정착된 '엽관제'(집권세력 중심의 공무원 인사)의 전통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단점도 있지만, 이 덕분에 미국 대통령들은 재선 성공시 무려 8년간 재임하면서도 임기말까지 행정부에 대한 통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엽관제보다 직업공무원제에 가깝다. 헌법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을 법률로서 보장하고 있다. 여기에 정무직이라는 엽관제의 요소가 가미된 형태다. 모든 공무원을 신분 보장이 안 되는 정무직으로 바꾸는 건 헌법에 위배되지만, 정무직의 범위를 일부 조정하는 건 법률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국장급까지 정무직에 포함시키는 게 지나치다면 차관보·실장급까지만 정무직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5년 단임제의 폐해는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다.

개헌은 만병통치약도, 유일무이한 대안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정치·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도 5년 단임제의 단점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굳이 고려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물론 공무원들로선 달갑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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