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치 리포트]한미약품 불똥 튄 공매도

[the300]종합

심재현 변휘 기자,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l 2016.10.11 09:12
빗나간 국회·금융당국의 공매도 대책…한미약품 사태 초래



국회와 금융당국의 빗나간 공매도 대책이 한미약품 사태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매도의 순기능을 키우기 위해서는 규제일방주의가 아닌 실효성 있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10일로 시행 103일을 맞은 공매도 공시제의 골자는 개별 주식에 대한 공매도 잔액 비율(상장주식 중 공매도 잔액 수량)이 0.5% 이상이면 그 내용을 공시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6월30일 이 제도를 시행하면서 투자자에게 정보를 주고 불공정거래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한미약품 사태로 현행 공매도 공시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매도 여부가 3거래일 이후 공시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와 외국인투자자가 판을 다 쓸고 난 뒤에야 공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증권사끼리는 알음알음 공매도 소문이 돌면서 사전에 대비하는 경우가 적잖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한미약품 사태에서도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 네트워크가 공매도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공매도로 최종 수익을 얻는 외국계 헤지펀드의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도 확인됐다. 현행제도에서는 공매도를 대행한 증권사의 정보만 공개된다. 수년째 외국계로 추정되는 공매도 세력과 갈등을 빚어온 셀트리온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허탈감을 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공매도 공시를 위반하더라도 벌금 5000만원의 솜방망이 처벌 외에 규제 수단이 마땅찮다는 점도 공시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 번 공매도로 수십억~수백억원의 이익을 챙기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긴장할만한 처벌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장에서는 공시를 위반하면 영업 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매도 공시제가 공론화된 것은 2012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노회찬 의원의 지적 이후다. 노 의원은 "공매도가 과도하게 집중되는 종목에 대한 대처가 미흡하면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를 요구했다. 이후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2014년 공매도 잔고공시 도입안을 내용으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올 3월초 본회의에서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같은 공매도 규제안의 바탕에는 공매도에 대한 부정론과 함께 비판여론에 기댄 포퓰리즘이 깔려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매도를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개인투자자들도 공매도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개인투자자의 경우 주식차입 과정이 번거롭고 차입 비용도 높아 현실적으로 공매도 전략을 활용하기가 불가능하다. 높은 차입비용구조를 개선해 개인투자자들을 공매도 시장에 참여시키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얘기다. 공매도는 주가 거품을 막고 하락장에서 증시에 자금을 공급하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한국만 공매도를 금지할 경우 외국인투자자의 이탈로 시장이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잖다.

정치권은 한미약품 사태를 계기로 다시 한 번 규제강화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기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은 공매도 기한을 60일로 제한하고 이를 넘기면 강제로 환매수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매도 규제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주가가 언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60일 시한을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공매도 금지안이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기관만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비대칭성 탓이 크다"며 "개인투자자의 공매도 접근 가능성을 높여 균형을 맞추는 방향이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공매도 공시기간 단축등 제도개선 검토


한미약품의 '늑장공시' 논란으로 공매도가 도마에 올랐다. 1년여 전 베링거잉겔하임과 맺은 수출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성 공시 전 한미약품에 대한 대규모 공매도가 발생, 이 정보를 미리 취득한 공매도 세력이 수익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공매도가 주로 외국인·기관에 허용된 탓에 '개미만 손해를 본다'는 비판 여론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긴장했다. 때마침 국정감사를 앞두고 사태가 벌어진 탓에 국회로부터의 파상 공세를 감당해야 했다. 줄곧 '공매도 폐지'를 주장해 왔던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사태의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필요한 사항에 대해 조속히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금융당국은 공매도의 '존폐'까지 거론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한미약품 사태의 본질은 미공개정보 이용 의혹 등 불공정거래 가능성일 뿐 공매도 제도 자체의 '결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임 위원장은 "(공매도 관련) 최소한의 규제만 시행함으로써 시장에 과도하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공매도 금지' 주장은 자본시장 활성화에 무게를 두는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어긋난다고 평가한다. 미공개정보 활용 의혹 또는 늑장공시가 대중의 공매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부채질한 것일 뿐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배팅하는 정상적인 투자 기법이라는 것.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의 방향에 대한 예측은 투자 전략의 기본"이라며 "상승 장에 배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평가'된 종목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하락장에 배팅하는 것은 오롯이 투자자 역량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욱이 공매도는 하락장에서 시장의 유동성을 공급해 자본시장을 키우는 긍정적인 역할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매도가 헤지전략으로서의 중요 수단 중 하나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산운용업계 한 관계자는 "가령 한 종목을 1만원에 매수하고 일부를 9000원에 공매도한다면, 얼마 후 이 종목이 폭락하더라도 투자 손실을 줄일 수 있다"며 "높은 수익률 뿐만 아니라 안정적 운용도 고민해야 하는 펀드 매니저들로선 변동성이 높은 종목을 적절히 공매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금융당국의 공매도 개선안은 개인들의 시장에 대한 불신과 공매도의 본질적인 순기능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선 현행 공매도 공시 제도의 강화 또는 공매도 종목의 부분적 제한 가능성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있다. 다만 어떤 방안이든 시장의 위축이 불가피해 국내 자본시장의 경쟁력에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우선 '거래일 후 3일'인 현행 공매도 공시시한을 단축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재 공매도 공시가 '투자자간 정보 형평성과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줄인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3일'은 개인투자자들로서 적절한 대응이 어려운 만큼 이를 보완하자는 취지다. 다만 공매도 참여자 중 다수가 외국인 투자자인 탓에 공시에 물리적으로 일정 시한이 필요한 점은 고려해야 할 변수다.

시장에선 공매도 허용 종목을 일부 제한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단기자금이 몰리고 주가 변동성이 커 공매도 세력의 '타깃'이 되기 쉬운 일부 중·소형 주에 대해 공매도 조건을 엄격하게 두자는 것.

정치권에서도 공매도를 현재보다 옥죄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은 주식을 대여해 공매도하는 기관이 60일 안에 매수 상환하지 않을 경우 자동 매수를 통해 상환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고,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상증자 기업이 공매도에 취약한 점을 고려해 유증 계획 발표 후 신주 발행가격 확정 전까지 공매도를 금지하는 법안을 내놓았다.


국민연금 '공매도 전당포' 오명에 곤혹··"차라리 주식대여 금지를"


국민연금공단의 공매도 이슈는 꽤 오래된 이슈다. 공매도가 논란이 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직접 공매도를 하진 않지만 다른 기관투자자나 외국인 투자자에게 빌려준 주식의 상당수가 공매도에 이용된다는 추정에서다.

국민연금이 빌려준 주식이 실제로 공매도에 이용됐는지 확인된 적은 없다. 대여주식은 증권결제, 담보제공, 바스켓구성, 차익거래 등 다양한 투자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빌려간 주식을 다시 대여하거나 다른 기관에서 빌린 주식과 함께 활용하는 방법까지 감안하면 거래구조가 복잡해 현실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국민연금의 주식대여 규모와 시기를 고려할 때 적잖은 대여주식이 공매도에 활용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애초에 국민연금의 주식대여를 허용한 취지는 보유주식을 가만히 놀려두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굴려 이익을 내자는 것이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주식대여로 이자 이익 190억원을 거뒀다. 2013년에는 98억원, 2014년에는 146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주식대여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입장에선 공적자금인 국민연금이 공매도 세력에 이용당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 7월말 기준 운용자산 540조원 중 97조9000억원(18.1%)가 국내주식에 투자된다. 국내 전체 상장 주식의 6%가 국민연금 소유다. 국민연금=공매도 전당포'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국민연금의 주식대여 금지를 골자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냈다. 20대 국회 들어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같은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대여금지법 통과가 해법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주식대여에 비판적인 여론 때문에 일정한 수준을 넘기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법으로 주식대여를 금지해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학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신중론이 대세다. 무조건 주식대여를 금지하는 게 비판여론에 기댄 포퓰리즘 법안으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학용 전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2월 국민연금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대여 규모는 6979억원으로 국내주식대여 전체시장의 1.31%에 그친다.

이는 글로벌 연기금의 4분의 1 수준이다. 미국계 글로벌은행 SSBT(스테이트 스트리트 뱅크 앤 트러스트)에서는 글로벌 공적연기금의 주식대여비중을 5% 수준으로 파악한다. 국민연금의 주식대여가 공매도로 악용되더라도 시장 변동성을 키울만한 규모는 아니라는 얘기다.

지천삼 한국거래소 주식시장부장은 "일부 악용 가능성 때문에 제도를 없애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 용어설명 : 공매도란 보유 주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가 하락을 예상해 증권사 등에서 주식을 빌려 판 뒤 나중에 되사서 갚는 매매행위를 말한다. 매도 뒤 주가가 하락할수록 차익이 커진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