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명진은 김종인이 될 수 있을까

[the300]

구경민 기자 l 2016.12.27 05:25

"또 인명진인가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분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새누리당이 지난 23일 비상대책위원장에 인명진 목사를 지명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이 위중한 시기에 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영입이라는 해묵은 카드를 꺼내든데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새나왔다. 이번 만큼은 혁신을 내세운 '젊은 피'를 수혈해야 한다며 '새 인물'이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인명진 영입을 놓고 찬반이 엇갈린 가운데 기자는 문득 1년전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호남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의원들과 탈당을 감행했던 시기가 오버랩됐다. 문재인 전 새정치연합 대표는 안 전 대표와의 결별 이후 대표자리를 물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 경제멘토'인 김종인 교수를 비대위원장 겸 선대위원장으로 영입, 대표의 권한을 모두 넘겼다. 그의 영입을 놓고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도 '경제민주화'를 관철시킨 소신파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반면 여든살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노욕' '원로정치'라는 곱지 않은 시각도 적지 않았다. 4·13 총선의 공천 전권을 쥔 김 비대위원장은 당시 주류·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고강도 물갈이를 단행했다. '김종인 독재당'이란 반발 속에서도 김 비대위원장은 '강한 리더십'으로 흔들림없이 본인의 문제해결을 고집해 나갔다. '경제민주화'를 만든 정치권의 어른으로서 풍기는 '특유의 카리스마'가 의원들을 휘어잡았다는 게 당 내외의 대체적인 평이었다. 결국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승리를 이끈 주역이 됐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도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경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김 전 비대위원장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인 내정자는 2000년대 이후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왔지만 군사정권 시절 오래 민주화운동을 해오면서 진보 진영에서도 폭넓은 존경을 받아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당내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의원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저항이 거세 개혁 작업이 순항할지에 대해서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일부 사무처 당직자들까지도 탈당파 그룹의 개혁보수신당에 눈을 돌리고 있어 탈당 러시가 이어질 경우 친박 주류로 남은 새누리당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형국이다. "친박핵심 청산은 새누리당 개혁의 본질"이라고 말한 인 내정자가 김 전 비대위원장처럼 위기에 빠진 보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새누리당의 운명이 그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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