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에서 주체로…온라인 딛고 현실정치 전면에 나선 여성들

[the300][대선기획-커뮤니티의 정치학]②'삼국카페'부터 '메갈리아'까지…남성위주 온라인 지형 바꿔

박소연, 이재원 기자 l 2017.03.08 07:51


남성들이 온라인상에서도 오랜 세월 '주류'로 살아온 것과 달리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제목소리를 낸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주목받은 것은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집회 때인데 온라인 커뮤니티가 기반이 됐다. 미용, 패션 등 공통 관심사와 취미를 토대로 모인 이른바 '삼국카페'(소울드레서·쌍코·화장발) 회원들이 주인공이었다. '생활정치'를 기반으로 광우병 촛불집회에 나선 것이 오프라인 현실정치에 주체로 등장한 계기다. 유모차부대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2009년 언론법 반대 광고비를 모금하기 위한 바자회를 열고 '플래시 몹'을 진행하는가 하면 화장품 협찬 판매를 통해 마련한 수익금 일부를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 전달했다. 2010년엔 4대강 사업 저지 기금 마련 바자회를 여는 등 이전엔 없던 새로운 정치참여 방식으로 눈길을 끌었다. 82쿡, 레몬테라스, 마이클럽 등 여성 커뮤니티 역시 언론법 반대 광고비 모금을 위한 '뻔뻔한 바자회'를 열고 보수신문 광고주 불매운동을 펼치는 등 정치적 보폭을 넓혔다.

 

소비 주체로만 인식됐던 여성들의 정치 참여는 주류 사회에 충격을 줬다. 미용, 패션, 육아 등 공통 관심사를 토대로 모인 여성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유대감과 공동체성을 발전시키며 자신들만의 언어와 놀이로 현실정치를 재해석했다. 거대담론이나 이념보다 육아, 보육, 환경, 먹거리 등 생활정치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남성 커뮤니티와의 차별점이다.


손희정 여성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온라인 공간에 남성과 여성이 흡사한 비율로 섞여있었는데 오랫동안 네티즌은 남성을 지칭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온라인은 남성적 공간으로 여겨졌다"며 "여성들이 2010년 이후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온라인에 여성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상에서 영향력을 날로 확장해가던 여성 커뮤니티는 젠더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메갈리아' 사이트의 등장으로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는다. 한국 사회의 젠더 질서를 '미러링'이란 패러디를 통해 재구성해 비대칭적인 젠더 구조와 여성 억압을 드러내려는 이들의 노력은 '혐오'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낳으며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메갈리아의 등장은 남초 커뮤니티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소위 '메갈리아 사태'라고도 불리는 지난해 9월 '시사IN 절독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시사IN이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을 '분노한 남성들'에 의한 일방적 공격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오늘의유머, 클리앙 등 진보적 성향의 남성 커뮤니티가 '절독'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논평을 냈다는 이유로 정의당 등 진보 정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다.

 

여성 커뮤니티 안에서도 메갈리아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메갈리아의 등장으로 젠더 이슈가 온라인공간에서 큰 파급력을 얻게 되는 등 온라인 커뮤니티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손 연구원은 "일각에서 보듯 메갈리아가 소위 '삼국카페' 등 과거 여성 커뮤니티와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버성폭력이나 낙인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찾던 여성들이 삼국카페 안에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언어를 개발하고 학습하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며 "이후 여성들은 트위터, 페이스북, 일베, 디씨 등에 저마다 섞여있다가 사안별로 각기 다른 정치성을 갖고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분리해 얘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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