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스코어보드-외통위(종합)]혼돈의 韓 외교 속 깊이있는 토론

[the300]

최경민 기자 l 2020.11.06 06:00

2020년 외교통일위원회(외통위)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간 큰 충돌없이 품격있는 토론이 오갔다. 국감을 앞두고 △우리 공무원의 서해 피격 사건 △강경화 외교부 장관 남편의 '미국 요트 투어'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 △미중 갈등 △미국 대선 △중국 관영매체의 BTS(방탄소년단) 비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25전쟁 왜곡 등 첨예한 이슈들이 쏟아진 가운데, 생산적인 토론을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핫피플…외통위를 빛낸 의원은?=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외통위를 대표하는 '스나이퍼'로 자리매김했다. 외교관들의 성비위·갑질 사례를 폭로하며 외교부의 쇄신을 강하게 주문했다. 서해 피격 사건, 미중 갈등 등 외교 당국이 직면한 주요 현안도 피해가지 않았다. 대북특사 등 과감한 남북관계 개선 방안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전해철 의원의 논리정연한 질의가 돋보였다. 북한의 코로나19(COVID-19) 방역을 위한 치료제·백신 공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외교관 출신인 조태용 의원이 차분하면서도 예리한 질의를 거듭했다.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를 하면서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 시 '탄소배출권'에도 신경써야 하는 상황을 지적했다.

여당의 김영주 의원은 외교관 자녀 학비 명목 지원금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외교 현장의 실질적 문제를 지적하는데 주력했다. 같은당의 이재정 의원은 특유의 에너지로 '탈북민 인권 지킴이'로 나섰고, 후쿠시마 원전수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했다.

국민의힘의 김기현·정진석·태영호 의원도 수준 높은 질의를 선보였다. 김 의원은 외통위의 주요 이슈 다방면에서 집요하게 야당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정 의원은 공세적인 질의를 하다가도 강 장관에게 "힘내시라"는 위로의 말을 전하는 등 신사적인 태도를 보였다. 태 의원은 남북 현안과 관련한 실효성있는 질의를 거듭하며 첫 국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핫이슈…외통위를 달군 이것은?=지난달 7일 외교부 국감은 조성길 전 대사대리가 국내에 있다는 소식 직후에 열렸다. 조태용 의원은 "우리에게 협력을 제공했던 제3국 정부와 외교관계에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외교 솔루션을 조언했다. 김기현 의원은 이 사실이 공표된 게 반인권적이라고 했고, 강 장관은 이 의견에 동의했다.

우리 공무원의 서해 피격 사건은 국감 기간 내내 핫이슈였다. 야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했고, 여당 의원들은 방어에 나섰다. 이태규 의원은 유족들을 국무위원들이 안 만나주는 현실을 강도높게 비판했고 강 장관의 "유족들을 뵙겠다"는 답을 끌어냈다. 강 장관은 지난달 21일 숨진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와 면담을 가졌다.

한미동맹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13일 국감에서 이수혁 주미대사가 "70년 전에 한국이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 간 미국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강 장관은 "일부 표현에 문제가 있었다"며 "발언의 취지를 검토한 후 주의 조치를 내리겠다"고 정리했다.

중국의 '6·25전쟁 왜곡'도 주요 질의 대상이었다. 강 장관은 시 주석이 6·25전쟁을 '제국주의에 맞선 전쟁'으로 표현한 것과 관련해 '역사왜곡'이라는 취지로 설명한 후 "북한의 남침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강경화 장관의 거취 문제 역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 장관은 뉴질랜드·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의 성추문 관련 의혹에 대한 질의가 이어지자 "그 누구보다 장관인 제가 정말 리더십의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저의 리더십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국민들이, 대통령이 평가하면, (인사권자가) 합당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했다.

◇GOOD…여야 모두 '美 대선' 머리 모아=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의 외교 통일 정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국무위원들과 국회의원들은 수준 높은 토론을 이어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바이든 후보 당선 시 미국이 '전략적 인내'로 회귀할 가능성을 질의하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오바마 행정부 3기가 아닌, 클린턴 행정부 3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며 바이든 후보를 대화 테이블로 유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진 의원은 우리 정부가 '바이든 캠프'의 외교안보 분야 실세들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질타했다. 이에 강 장관은 "2016년 미 대선 당시 외국의 선거 개입이 큰 문제였다. 그래서 바이든 캠프의 주요 인사들은 일체의 외국 인사들을 안 만나는 것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AD…'대통령 무릎' 언급에 고성오가=모범 상임위였던 외통위 국감에서 유일한 '옥의 티'는 지난 8일 발생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북측이 우리 공무원을 피살한 사건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들을 겨냥해 "고장난 레코드 판 돌리듯이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야 간 고성이 오갔다.

김기현 의원이 '고장난 레코드' 발언에 대해 항의를 하자, 윤 의원은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라고 한 게 누군데요"라고 소리쳤다. 김석기 의원이 "지금이라도 유가족에게 무릎꿇고 사과해야 한다"고 한 점을 거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야당에 무릎을 꿇으라고 한 게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이자 이번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한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했던 것인데, 이에 대해 윤 의원이 '발끈'한 것이다.

송영길 외통위원장이 흥분한 여야 의원들을 진정시킨 후에야 국감이 속개될 수 있었다. 송 위원장은 "상대 의원을 존중해달라. 절차를 거쳐 발언해달라"라며 "발언을 할 때는 상대의 발언을 존중해달라"고 당부했다.

◇300어록…"제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닙니다"=강경화 장관의 남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의 '미국 요트 투어' 사건과 관련해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만류를 했어야 하지 않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제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까지도 모두 '빵'터진 한 마디였다.

강 장관의 인간적인 고백에 가까운 이 말에 질의를 한 이태규 의원을 포함해서 외통위 의원들 대다수가 웃음을 보였다. 이태규 의원은 "경위를 떠나 송구스럽다고 하니까,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보다는 훨씬 낫다"고 밝혔다.

정진석 의원은 "배우자께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신 것 같다"라며 "솔직히 이 문제로 강 장관을 코너로 몰고 싶지 않다. 측은지심도 든다"고 위로의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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